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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평창군 평창읍 모습입니다. 강물이 농경지를 덮치고 있습니다.(이하 사진은 모두 김혜원 기자의 친구인 김진숙씨가 보내온 것입니다.)
지난 7월 14일 평창군 평창읍 모습입니다. 강물이 농경지를 덮치고 있습니다.(이하 사진은 모두 김혜원 기자의 친구인 김진숙씨가 보내온 것입니다.) ⓒ 김진숙
제 친구가 사는 곳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높이라는 해발 800미터, 그래서 해피800으로 불리기도 하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입니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억수로 퍼붓던 지난 7월 15일 강원도 평창에 큰 수해가 예상된다는 뉴스가 들리자, 너나 할 것 없이 친구네로 안부전화를 넣었습니다.

친구는 물이 차오르는 집주변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우리에게 보여주며 걱정을 했습니다. 자기의 집은 다소 높은 위치에 있어서 걱정할 것이 없지만 올 봄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고생해서 가꾸어 놓은 논밭이 모두 물에 잠겨서 실망하실 시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집이 침수되지 않았다니 다행이지만, 문제는 단수였습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수해를 당해보지 않았던 터라 수해로 고립이 된다 해도 식수나 비상식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친구의 아이들이 유리창에 물을 달라며 구호 요청을 합니다.
친구의 아이들이 유리창에 물을 달라며 구호 요청을 합니다. ⓒ 김진숙
친구는 오늘까지 닷새 이상 빗물을 받아먹고 있답니다. 비가 얼마나 세차게 오는지 옥상에 내놓은 커다란 그릇이 금방 금방 차오른답니다. 그 물을 받아 가라앉혀 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화장실에도 쓰고 설거지를 하기도 하지만 물이 나올 때까지는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할 듯합니다.

다행히도 16일부터는 비가 그치고 논밭을 잡아먹었던 물도 빠르게 빠져 나가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해서 답답합니다.

식수로 쓰기 위해 빗물을 받고 있습니다.
식수로 쓰기 위해 빗물을 받고 있습니다. ⓒ 김진숙
설겆이 물이 없어 일회용그릇과 비닐을 이용한답니다.
설겆이 물이 없어 일회용그릇과 비닐을 이용한답니다. ⓒ 김진숙
그렇게 답답한 와중에도 평창읍내에서 유일하게 수해를 입은 가정을 찾아 수해복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아담한 보리밥집이 수해를 당했는데 주민들 모두 심란한 가운데도 자기집일처럼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모습이 우리네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름답습니다.

저 역시 그 유명한 1984년 서울 풍납동 대홍수때 바로 옆 동네인 성내동에 살면서 수해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치매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는 군용구조 헬기로 인근 초등학교로 옮겨지셨고 나머지 가족들은 해병대의 고무보트를 타고 집을 빠져 나왔었지요.

달력의 글씨를 보면 상당한 높이 까지 물이 찬 흔적이 보입니다.
달력의 글씨를 보면 상당한 높이 까지 물이 찬 흔적이 보입니다. ⓒ 김진숙
이웃 주민들이 내집일 처럼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내집일 처럼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김진숙
문제는 물이 빠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입니다. 물위를 둥둥 떠다니던 살림살이들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고 당장 입을 옷도 덮을 이불조차도 모두 구정물속에 담겨져 기름과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눈물만 흐르던 그때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수해를 당한 주민들은 울면서 빨래를 합니다. 울면서 청소를 하지요. 길거리엔 물 때문에 못쓰게 된 가구며 가전제품이 산처럼 쌓이고 덥고 습한 날씨에 부패하는 냄새마저 진동을 합니다. 하루에 몇 번씩 소독차가 지나다녀도 한동안 악취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럴 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특히 집안을 청소하고 가재도구 등을 닦고 옮길 때는 수해당사자는 도저히 눈물이 앞을 가리고 속이 상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법이거든요. 당시 피해를 당하지 않은 친척들과 이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집으로 들어와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주고 빨래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욱 좌절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마운 이웃들의 손길이었습니다.

깨끗한 물을 끌어 들여 구석 구석을 닦아 내야 합니다.
깨끗한 물을 끌어 들여 구석 구석을 닦아 내야 합니다. ⓒ 김진숙
이렇게 따뜻한 이웃의 손길이 수재민에게는 희망입니다
이렇게 따뜻한 이웃의 손길이 수재민에게는 희망입니다 ⓒ 김진숙
수해를 당했다는 제 친구의 이웃을 보니 저 역시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도 이웃들의 도움에 마음속 깊이 감사할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그때는 북한에서 쌀과 담요도 지원받았답니다. 수해를 입어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던 우리들이 북한산 쌀과 담요를 받고 모처럼 활짝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해가 아니라면 어디 북한물건을 만져보기나 하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웃었더랬지요.

이제 우리도 도울 때입니다. 내가 당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 말고 모르는 사람들이라 어색해 말고 고무장갑 하나 끼고 달려가 설거지라도 도와보시길 바랍니다. 수해를 당한 분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웃의 손길입니다.

모두 따뜻한 마음과 눈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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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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