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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내 기억의 더듬이로도 채 찾을 수 없는 아주 어릴적부터였다. 물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검사받기 위한 일기로 나 역시 시작이 되었다. 마지 못해 쓰는 일기, 하늘이 허락만 한다면 한 달 내내 '이하동문!'이라는 네 글자로 한 페이지를 다 채울 수 있는 그런 일기였다.
그런데 보여주고, 검사받는 일기가 어느새 내 것이 되어 있던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인 하나 없는 낯선 타지생활이 무료했고,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소음이 지겨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벗 하나 없이 죽은 듯 지새우는 밤들이 나에게 일기를 쓰게 했다.
해서 그 시절의 일기는 참 슬펐다. 어린 나이에 지독히도 외로웠다. 그래서였을까? 집을 떠나온 뒤 "일기장은 어떻게 할까"하고 물어오는 오빠에게 미련없이 "태우든지 버리든지"라고 답했다. 그 시절의 외로움 따윈 지금 내 행복의 걸림돌이고 행복을 갉아먹을 질척대는 옛 기억일 뿐이라는 듯 말해버렸다.
큰 아이를 갖고서부터 나의 일기는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행복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육아와 생활과 일과 사랑이 총 망라된 잡탕식의 일기장이지만 어느 날은 일기를 쓸 기대로 밤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일기를 쓰는 순간은 언제나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는 일기의 서두를 장식했고, 내일을 준비하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복한 데코레이션이 되었다. 그렇게 써온 일기가 어느새 여섯 권의 대서사시가 되어 있다.
가끔 사는 게 고달프고, 말벗이 필요할 때면 난 일기장을 펼쳐본다. 그 안에는 내가 현실에 치여 잊고 살았던 행복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가 일기장을 펼쳐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아드레날린처럼, 눈송이처럼 솟아올라 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주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일기를 쓰고 있는 내 어깨 너머로 머루알 같은 눈동자를 날리곤 했다. "엄마! 오늘은 동생이랑 내가 싸운 얘기 쓰는 거죠? 누구 잘못이라고 썼어요?"
엄마의 일기장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바투 다가앉으며 물어오곤 했다. 그때도 난 웃어주었다.
일기의 참맛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이가 일기장을 사달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일기를 쓸 때에도 난 놀랍지 않았다. 궁금증이 배가되면 꼭 실천을 해보는 것이 아이들의 본능일테니 말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교정에 일기만한 선생이 없다고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일기 쓰기를 권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이 만족하는 일기를 쓰게 하기 위해 공부방이며 학원을 보낼 때 일기를 쓰라고 말하기보다는 일기의 궁금증만을 증폭시키며 근본 없는 배짱만 두둑한 나로서는 자발적인 아이의 일기쓰기는 사실 기특함을 넘어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아이의 일기는 어른의 잣대로 보자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두세 줄의 일기를 쓰면서도 아이는 나름대로 고민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 후 만족의 미소를 짓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일기장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엄마에게 꼭 돼지고기를 상품으로 받아서 줘야겠다"는 바람을 넘어 진짜 글쟁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그때쯤이면 일기의 참맛도 깨달을 수 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