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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따라 주변에서 나고 자라는 꽃과 나무, 풀들로 옷감을 물들이고 싶다는 소원을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시골에 살면서부터 다행히 그 소원에 한 발 다가설 수 있게 되었지만 제때제때 자연의 염료로 물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
대문 밖으로 조금만 나서면 쑥이 지천인 때, 무릎까지 자란 쑥들을 한 아름 베어와 쑥물을 들였다. 그러나 욕심 부려 옷감을 많이 담그는 바람에 원하는 쑥물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몇 년 전부터 말려 잘 보관한 '건쑥'도 있지만 이것은 조금 더 아껴두고 싶은 마음만 그득하니 자연에 살면서도 덜어내고 담아내는 마음의 나눔까지는 아직 멀었나 보다.
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 쪽 염색의 계절이다. '염색의 절정은 쪽물들이기'라는 말을 마치 내가 지어낸 말인 양 떠벌리곤 하는데 정작 쪽 염색의 계절이 다가오니 쪽씨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요즘 환경에 답답하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지난 봄, 편지봉투 절반 분량의 쪽씨를 얻게 되어 마당 한 귀퉁이에 뿌리려 했다. 올해는 반드시 생쪽 염색을 해야지. 발효쪽까지 만들어 쪽 염색의 절정을 맛보리라.
찻잎을 따고 덖는 곳에 따라다니며 녹차 만드는 경험을 한답시고 시간 보내고, 매실을 수확해 원액과 장아찌용으로 담그느라 종종거리고, 불편한 작업장 때문에 집을 옮겨볼까 싶어 또 여기저기 떠도느라 헛시간을 보내다 보니 훌쩍 여름으로 건너왔다.
텃밭 일굴 부지런함은 아예 흉내도 내지 못했으니 쪽씨는 올해도 고스란히 묵히던 참이다. 비가 잦더니 태풍과 장마가 계속되며 눅눅한 날이 이어져 집안 단속하고 밀린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쪽농사는 결국 어영부영 때를 놓쳤고, 제주도의 한 동호회원이 쪽염색을 해보겠다며 씨를 구하기에 그 절반을 보내버렸다.
쪽의 싹이 텄다는 글을 본 것이 엊그제이고 벌써 생쪽으로 물들인 사진들이 동호회 곳곳에 올라오고 있어 조급한 마음만 더해 갔다. 여름 염색의 절정인 '쪽염색'도 그림의 떡에 머물 뻔했으나 부산 염색아카데미의 7월 수업 '생쪽으로 물들이기'에서 '쪽염색'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쪽염색'을 하기 위해 쪽잎을 뜯어와 잎을 모두 땄다. 예전에 쪽잎을 찧을 때는 돌절구에 넣고 마구 짓찧었는데 요즘엔 점점 요령이 생겨 녹즙기 등을 이용하곤 한다. 그렇지만 적은 양이 아닐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가장 쉽고 편하게 염료를 추출할 수 있는 게 고춧가루 빻는 기계여서, 요즘은 이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로 갈아낸 쪽잎을 망에 넣은 뒤 얼음을 둥둥 띄워 차갑고 시린 물속에서 주물러 준다. 처음엔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푸른빛으로 짙어지는데, 흔히들 쪽빛이라 말하는 생쪽 염색의 첫 모습은 이렇듯 곱고 맑은 연둣빛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에도 청대(靑黛, Indigo naturalis : 남(藍) 또는 람실이라고 함)로 염색하면서 발효쪽을 잠깐 경험했지만 온전한 내 것이라 자신할 수 없다. 발효쪽은, 더 공부한 다음에 풀어가야겠다.
무더운 날, 창가에서 하늘거리는 발[簾]을 상상하며 물빛 블루(blue), 모시자락에 나부끼는 쪽빛 하늘을 그려본다.
덧붙이는 글 | 쪽염색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올여름엔 생쪽, 발효쪽 등 다양한 쪽염색을 경험해야겠습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