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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 뭘 가지고 있는지 보자.
장대를 든 사내는 땅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소리를 내는 솟의 가죽 옷 안섶을 더듬었고 그 품안에서 들소 오줌보로 만든 주머니를 끌러 내었다. 사내가 주머니를 열어보니 주머니 안에는 날카로운 돌과 부싯돌이 들어 있었다. 사내는 씩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던져버리고서는 솟의 머리를 움켜잡고서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것 봐...... 헉!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사내는 얼굴을 감싸 안았다. 솟이 흙을 손에 움켜쥐고 있다가 사내의 얼굴에 뿌려대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두 명이 손쓸 사이도 없이 솟은 사내의 장대를 빼앗고서는 자신이 얻어맞은 것 보다 더한 강도로 사내를 후려쳤다.
사내는 솟이 휘두른 장대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고서는 땅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솟은 다른 두 명이 얼이 빠져있는 사이 자신의 주머니를 재빨리 챙겨들고서는 달리기 시작했다. 두 명의 사내는 쓰러진 사내를 돌보느라 솟을 뒤쫓을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솟은 이를 알지 못했다.
-수이!
한참을 달리던 솟은 우뚝 멈춰선 채 다시 수이를 찾았다. 그제야 솟은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라진 수이와 그들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솟의 가슴속에는 겉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료들이 살아 있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면 자신의 신부를 빼앗긴 녀석 따위는 사냥에서조차 빼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이를 탓하고나 놀릴 동료조차 없었지만 솟의 마음은 이미 엄청난 굴욕감에 휩싸여 있었다. 솟은 본능적으로 아까의 그 사내들과 수이가 사라진 일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솟은 꺼림칙한 강물로마나 배를 채워 허기를 달래고서는 커다란 나무에 등을 대고 누웠다.
-수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솟은 자신을 자책하며 아까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위험에 닥쳤을 때 도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지만 솟은 그런 마음을 견디고 맞서 싸울 수 있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여기다!
바로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솟은 앞뒤 가릴 것 같이 뛰어나가려 했지만 이미 앞에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솟은 돌 하나를 주어 움켜쥐고서는 다가오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모두가 남자였는데 그 수는 솟이 살았던 두 마을의 남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 중에는 아까 솟이 휘두른 장대에 맞은 사내도 있었는데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산 너머에서 왔는가?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솟을 윽박지르는 태도로 말했다.
-그렇다.
-돌아가라.
솟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사내를 노려보기만 했다.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
솟이 토하듯이 소리쳤다.
-수이를 내놔!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솟의 태도에 의아해 하기만 했다.
-뭘 내어 놓으란 말인가?
-너희들이 내 여자를 잡아가지 않았나!
그 말에 나이든 사내는 얼굴을 떨며 몹시 화를 내었다.
-너는 우리 마을 사람을 때린 것도 모자라 모욕까지 하고 있다. 우리는 정당한 대가 없이 다른 부족의 여인을 탐하지 않는다.
-그럼 수이가 어딜 갔단 말이야!
솟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듯이 숲 속의 새들이 어지러이 날라서 어디론가 몰려갔다.
-저 놈의 입을 막아라.
나이든 사내의 말에 솟의 뒤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몰려가 솟을 강제로 땅바닥에 엎고서는 입을 막고 덩굴로 손을 묶어 버리려 시도했다. 솟은 입을 틀어막는 사내의 손을 물어버리고 크게 괴성을 지르며 수이를 찾았다. 어느새 숲 속의 새들은 시끄럽게 지저귀며 날아올라 하늘을 가득히 메워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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