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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가 19일 오후 경북 포항 오광장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몇일전 집회의 경찰진압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진 가운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가 19일 오후 경북 포항 오광장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몇일전 집회의 경찰진압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진 가운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가 19일 오후 경북 포항 오광장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몇일전 집회의 경찰진압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진 가운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건설노동자 투쟁승리와 경찰폭력 규탄 민주노총 영남노동자대회'가 19일 오후 경북 포항 오광장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몇일전 집회의 경찰진압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진 가운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머리 보호를 위해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4800개 검은 헬멧과 맞선 4000개 흰 헬맷.

19일 오후 포항 포스코 단지가 내다보이는 포항 남구 형산로터리는 마치 바둑판 같았다.

흰색 헬멧을 쓴 노동자 4000여명은 포항 건설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중인 포스코 본사를 향하려 했고, 이들과 맞선 경찰 4800여명은 검은 헬멧을 쓴 채 노동자들의 행진을 막았다. 서로 다른 색깔을 한 이들 사이에는 간간이 경찰 살수차가 뿌리는 물대포와 세를 과시하려는 듯 두 세력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건설산업연맹 소속 노동자 4000여명은 포항 남구 5호광장에서 영남노동자대회를 연 뒤 포스코를 향해 행진했다. 그러나 행진은 30분여분만에 형산로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 병력과 마주했다.

전국에서 모인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13일부터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날 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하루 8시간 근무보장 ▲토요 유급휴무 ▲농성중인 포항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 등을 촉구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격려사와 투쟁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예상한 듯 헬멧과 손수건, 마스크 등을 챙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환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 출동한 의무반의 한 관계자는 "핸드폰을 꼭 비닐로 싸서 보관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지시했다. 경찰이 쏘아대는 물대포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관을 향해 걸어오자 경찰은 물대포로 이들의 행진을 막았고, 행진은 30분만에 마무리 집회로 이어졌다.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노가다'라 불리는 것도 서러운데, 인간적 대접도 받지 못해 억울하다"며 공통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현장에서 만나본 이들은 대부분 40∼50대 남성으로 자녀 교육을 걱정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자식 교육비를 위해 열심히 일한만큼 대우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집회나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에 강한 불신을 품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똑바로 사실보도 하라"는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헬멧으로 무장한 이들은 "우리는 평화시위를 원하지만 경찰에서 먼저 치고 들어오니 도리 없다"고 쇠파이프를 손에 들었다.

쇠파이프를 든 수백명의 노동자 선봉대가 포스코를 행한 행진대열의 선두에 서고 있다.
쇠파이프를 든 수백명의 노동자 선봉대가 포스코를 행한 행진대열의 선두에 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집회 참가자들이 자진해산한 뒤 경찰들이 수백개의 쇠파이프를 수거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진해산한 뒤 경찰들이 수백개의 쇠파이프를 수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 "이 돈 벌어서 자식 교육시키겠나"

김경식(55·울산)씨는 지난해 5월 울산에서 열린 '건설플랜트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이어 두번째 노동자 집회 참가다.

그는 "나도 이렇게 거리로 나오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나이 50이 넘어 인간대접 제대로 못 받고 사는데 어쩔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국내 어떤 건설회사도 자체 기능공을 갖고 있는 곳이 없다"면서 "전부 여기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싼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대에 4년간을 사우디 아라비아와 리비아에 건설 노동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씨는 "자식 공부시키려고 뼈빠지게 일했는데, 돌아온 것은 사회적 괄시뿐이었다"고 말했다. 재수생인 막내 아들을 둔 그는 "과연 이 벌이로 아들 대학공부를 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제 부자 아버지가 아니면 부자 아들 만들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윤여춘(46·광주)씨는 "원청인 포스코가 최저낙찰제로 하청 업체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하청업체들은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줄인다"며 "임금 현실화를 누차 주장했지만 원·하청 업주들의 이익 챙기기에 노동자들만 희생당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동절기를 제외하면 한달에 15∼20일 일하는 셈인데, 그나마 임금이 높은 기술직들이 일당 10만원 정도를 받아간다"며 "퇴직금이나 사회보장제도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냐"고 성토했다.

시위대의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박아무개씨는 "우리가 정말 한달에 300∼400만원 벌면, 미쳤다고 거리에 나왔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문에 보니 건설 노동자들이 한달에 400만원씩 벌면서도 근무 환경에 트집을 잡는다고 하더라"며 "넉넉하게 버는 사람이 왜 이 꼴로 거리에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경찰 살수차가 노동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경찰 살수차가 노동자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대포를 맞은 노동자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있다.
물대포를 맞은 노동자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 "언론, 안 믿어요"

기자가 취재중임을 눈치챈 일부 노동자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거나 멀리 피했다. 그나마 질문에 응하는 동료 노동자를 향해 "말조심해"라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강현관(45·광양)씨는 "언론에서 있는 그대로 써주는 경우가 없어 미칠 지경"이라며 "모두 우리가 '폭도'라고 하고,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더 이익을 보려고 파업이나 시위를 하는 줄 알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씨는 "우리도 평화시위를 하고 싶은데, 경찰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오면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하지만 언론은 쇠파이프 든 모습만 보고 우리의 진심을 왜곡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법에 있는 대로 8시간 근무와 토요 유급휴무를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그렇게 무리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보수 언론은 경남지역 경제가 망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며 "8시간 근무라는 타당한 요구는 반영하지 않은 채 마치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짓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3 "우리도 우리를 보호해야 되지 않겠나"

붉은색 조끼 차림의 집회 참가자들은 흰 헬멧에 얼굴을 가리기 위한 빨간 손수건이나 입 부분을 자른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매년 열리는 집회라 준비가 수월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헬멧과 모자, 수건 등 3겹으로 머리를 단단히 무장한 이들은 "우리도 우리를 보호해야 되지 않겠느냐", "전경들이 주먹만한 돌을 집어던지는데, 안전상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 중반의 남성은 "전경들은 방패같은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 안 죽으려면 머리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가 열리던 도중 뒤에서부터 쇠파이프가 전달됐다. 하지만 쇠파이프들은 애초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시위대 선두의 포항 출신 노동자 100여명이 쇠파이프를 든 채 경찰에 대항했을 뿐 대부분 노동자들은 "평화시위를 원한다"며 맨몸으로 행진했다.

포스코 본사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남편을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포스코 본사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남편을 돌려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포스코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경찰의 저지에 저항하며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포스코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경찰의 저지에 저항하며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 사이에 낀 농성노동자의 가족이 울부짖고 있다.
경찰 사이에 낀 농성노동자의 가족이 울부짖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일 오후 5시 30분께. 포항 남구 5호광장-형산로터리에서 열린 영남노동자대회의 말미에는 뜻밖에 여성 50여명이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처럼 헬멧을 쓰지도, 붉은 조끼를 맞춰 입지도 않았다. 그들은 포스코 본관을 점거 농성중인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가족들이었다.

노동자 4000여명은 오후 5시께 형산로터리를 향해 행진하던 도중 경찰과 30분간 대치하다 갑자기 행진을 멈추고 뒤돌아 마무리집회를 열었다. 이에 선두에 있던 가족들은 "왜 벌써 끝내는 것이냐"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집회 초반 "우리도 노동자다, 8시간 노동 쟁취하자", "건설파업 정당하다, 공권력은 물러가라"는 그들에게는 낯선 구호들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행진이 포스코 본관까지 이어지지 않자 길을 막아섰던 경찰을 향해 울분을 터뜨렸다.

차도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이들은 "밥이라도 넣게 해달라"며 전날(18일)부터 중단된 도시락 공급을 강하게 요구했다. 한 여성은 "남편이 집으로 전화해 배고프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며 "밥 좀 넣어주자는 데 그것도 안 되느냐"고 성토했다.

전혀 무장하지 않은 가족들이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들은 당황해하다가 이들을 겨우 차도에서 인도로 몰아냈다. 계속된 항의에도 경찰은 이들을 둘러싼 채 진입을 저지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여성들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사람인데…"라며 울먹였다.

경찰과 실랑이 도중 30대의 임신부가 실신해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가족들을 인도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경찰 5∼6명이 10여분간 그를 둘러싼 채 방패와 발로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포항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어 "오히려 오늘 집회 진압 과정에서 경찰 7명이 부상을 당했다"며 "경찰에 의한 폭력은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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