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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이 발달하고부터 사람은 점차 자연과 동떨어져 살게된 듯 하다. 자연 속에서 자원을 얻어 물질을 발명해냈고, 그로 인해 생활은 더없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문명은 그 ‘부작용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휴대폰과 초고속 인터넷을 비롯한 물질문명의 편의 없이는 살기가 어려워졌다. 물질이 넘쳐나 사람의 생활을 통제하고 급기야 자연과 사람의 삶이 심각하게 괴리되어버렸다. 그러자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외침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자연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과연 한 그루 나무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저자 우종영씨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호떡이 먹고 싶어 신문배달을 하면서 이른 새벽,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문학자가 되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선천성 색맹이란 선고로 인해 꿈을 접고 긴 시간 방황해야만 했다. 중동에서 벌어온 돈을 쏟아부어 농사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망쳐버렸다. 망연자실하여 매일 북한산을 오르던 어느날, 그는 산의 정상에서 죽음에 대한 강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그렇게 나무와 인연을 맺은지 20년, 현재 그는 나무의 생명을 돌보는 나무의사가 되어 나무처럼, 자연처럼 살고 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를 통해서 들려주는 그의 나무 이야기는 그 자체로 사람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즐겁거나 애달픈 사연을 담은 나무 이야기, 조화롭게 무리를 지어 살거나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외롭게 사는 나무 이야기 속에서 우리네 어리석음을, 또한 나아갈 바를 자각하게끔 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 꼭 이 나무처럼 오래오래 사랑할 것만 같던 젊은 부부는 남편의 위암 선고로 인해 생이별을 해야할 운명에 놓인다. 모두, 그들이 사랑한 만큼 비탄에 빠지리라 믿었지만 부부는 언제나 그랬듯 눈물보다 웃음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다음 생에서는 주목과 같은 천년의 사랑을 약속하며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포개고 잠을 잔다. 재미있는 건 잎들마다 서로 맞닿을 짝이 있어 그 잎 중에 혼자 남는 잎 하나 없이 밤이 되면 정겹게 찰싹 달라붙어 잔다는 것이다. 그리고선 아침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뉘어져 활짝 펼쳐져 있는 자귀나무는 마치 금슬 좋은 부부를 보는듯 하다. 언젠가 시골마을에서 만나 갈 곳 없는 객을 친절히 맞아준 수줍은 신혼부부를 꼭 닮았다.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하얀 설원을 더욱 눈부시게 했던 자작나무. 이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럽게 벗겨 그 위에 정성들여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단다. 이루지 못할 사랑일수록 자작나무로 만든 편지가 힘을 발휘한다나!
너무 쉽게 고백하고, 너무 쉽게 변하고, 너무 빨리 끝나는 요즘 사랑. 나무에 담긴 사연처럼 사랑한다면 조금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서서히 녹아들어 온전히 하나가 되기보다 무조건 소유하여 과시하려 들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랑 앞에서 나무의 사랑을 교훈 삼아보자.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여 이제는 익숙한 연리지. 바람 따위에 상처를 입어 속살이 드러나거나, 두 줄기가 살짝 맞닿아 있다가 그대로 한 몸이 된 연리지는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몸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한쪽의 생리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흰 꽃을 피웠던 가지엔 흰 꽃이, 붉은 꽃을 피웠던 가지엔 붉은 꽃이 그대로 피어난다. 한 몸이면서도, 상대의 기질을 존중하는 참으로 건강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커피 광고 카피를 인용한다면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이라 할 만하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서 오직 일 속, 일 종만 있는 외로운 나무다. 독립수라는 특성 때문에 숲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그렇게 홀로 거대한 몸집으로 살아가는 은행나무는 땅 속의 영양분을 독식해 그 주변에 작은 풀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밤나무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젓나무는 다르다. 젓나무는 외대로, 위로만 뻗는다. 그런데도 절대 흔들리거나 부러지는 예가 없다. 그것은 저희끼리 적당한 간격으로 무리를 이뤄 각종 풍상을 이겨내는 지혜 때문이다.
사람도 이러하다. 누군가는 홀로 앞서나가겠다고 한껏 독기를 품고서는 주변의 경쟁자들을 짓밟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자신의 곧고 밝은 심성을 유지하면서도 벗과 아울러 발전하고자 애쓴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우뚝 선다한들 인정도, 사랑도 없는 그곳이 무어 그리 좋겠는가 싶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이 들려주는 나무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 중에서 나는 회양목의 사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느림보라는 별명이 꼭 어울리는 회양목. 회양목 나무의 직경이 한 뼘 정도 자라려면 최소한 오백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더딘 성장의 시간 동안 회양목은 그 속을 다지고 또 다져 그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을 지닌다.
선생의 말을 빌려 나 또한 지금의 내게 묻는다. 내 안에는 과연 기나긴 시간 더디면 더딘 대로 그렇게 노력해온 무언가가 있는지를.
나무의 삶도, 사람의 삶도 어느 하나가 옳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 않겠는가. 나무처럼 살고 싶다한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누구는 비현실적이라 하고, 어리석다 하지만 나는 자연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좋다. 또한 그들이 있어 세상이 조금씩 건강해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 역시 '나무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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