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지역 생명평화탁발순례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즈음에 순례단과 각 교단의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 생명평화간담회가 열렸다.
"어떻게 하면, 생명평화가 종교인들 사이에서 공동선이 되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사회에 생명평화운동을 확산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생명평화에 대한 종교인들의 평소 생각과 경험들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간담회는 20일 성공회 대전 주교좌교회 소회의실에서 있었다. 생명평화탁발 순례단과 불교, 원불교, 정토회, 대전NCC, 개신교, 카톨릭, 성공회의 성직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회를 맡은 김조년 교수(한남대 사회학)의 제안으로 모든 참석자들은 각자의 종교와 신념체계를 밝혔다. 그리고 각자의 종교와 믿음체계를 통하여 생명평화를 묵상했다. 각각의 종교와 신념체계 안에서 생명평화의 의지와 경험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도법스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도법스님은 "40년 수도생활 중 아침, 저녁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명평화를 위해 기도했다"며 "그렇지만 같은 불교 안에서도 갈등과 미움과 불신이 끊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도법스님은 이어 "이것이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일반에 만연된 풍조가 아니냐"며 "종교가 우리 사회의 대립과 폭력과 원한을 풀어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도법스님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실상사 주지자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며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명평화를 물으며, 듣기 위하여 생명평화탁발순례에 나서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생명평화운동이 범 종교, 시민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최종선 목사(대전NCC 총무)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라는 선교 전략 때문에 개신교가 전투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며 "종교 다원을 주장하거나 인정하는 교수들은 여지없이 신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목사는 "어떠한 경우든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것으로써 그리스교의 중심 되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명상춤 운동가인 김종희씨는 "구원이 어떤 종교가 독점할 수 있는 가치인가"라며 "집밖에만 나가면 막무가내로 자기 종교를 선전하는 무뢰배들로 인해 종교 공해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발언에 나선 김도연 원불교 교무는 "원불교에서는 남녀가 평등하게 종교사역을 수행한다"며 "원불교 대학에서는 불교학뿐만 아니라 기독교학개론을 공부한다"고 소개했다.
김 교무는 이어 "원불교 대학에서 공부할 때, 감리교 김선환 교수를 비롯한 여러 기독교 신학자들의 강의를 들었다"면서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부처님처럼, 하나님처럼 대하는 것이 원불교의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 내 집안, 내 종교만을 챙기게 되는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에 관련해 이건종 목사(살림교회)는 "각 교단신학교의 다른 종교학커리큘럼이 비교종교학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라며 "나도 신학교에서 타종교학을 배웠지만, 그것은 선교학적으로 다른 종교를 이해하려는 비교종교학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신부(성공회 대전주교좌교회 주임신부, 종교학교수)는 "성공회신학대학에서는 모든 종교를 교육한다"며 "신학생들이 다원종교를 인정하고, 상호 이해하며, 존중하도록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윤 신부는 이어 "그 때문인지 이슬람교 신학생들이 유학 와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을 연구하고 학위를 취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광석 신부(카톨릭)도 "카톨릭신학교에서는 깊이 있게 다른 종교를 공부한다"며 "신학생시절에 동양철학을 공부했으며, 반야심경을 외웠다"고 말했다. 또 "학술제 때에는 무속인을 초대하기도 하고, 개신교 신학대학 교수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며 "나도 신학적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다른 종교의 교리와 대립과 갈등을 겪지는 않았다"고 한 신부는 회상했다.
한 신부의 말을 장곡스님(갑사 주지)이 받았다. 장곡스님은 "환경운동연합, 백제문화재단 이사장, 시니어클럽 대전 본부장, 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등 40, 50여 가지 직함을 가지고 있다"며 "불교인들의 잘 나서지 않는 성향 때문에 자신이 그 많은 일을 떠맡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장곡스님은 "대신에 목사님 신부님 등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되었다"며 "초파일이 되면 다른 종교인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화분을 선물 받는다"고 자랑했다. 물론 장곡스님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성탄을 축하하는 펼침막을 절 문에 내건다고 한다.
그러나 장곡스님이 이렇게 타 종교인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는 있지만, 아직 내면을 터놓고 이야기 한 적은 없었다면서 고란사 주지로 있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번은 기독교인들이 절 구경을 왔다. 그들은 경내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가 큰소리로 찬송가를 합창했다. 얼마를 기다려도 그치지 않기에 일부러 그러는구나 싶어 사람을 보내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왈, '종교간 대화를 하자는 양반이 이게 뭔 소리요'라고 시비를 걸었다. 또 절 집만 벗어날라 치면, 누군가 다가와 이미 35년을 중노릇한 내게 시비조로 '예수 믿어'라고 했다. 그럴 때면, 화가 나기에 앞서 실소 금할 수가 없었다."
간담회 말미에 도법스님은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대립과 갈등 현안이 되어 있는 좌우익 희생자문제를 지적했으며, 종교인들이 주도하는 대전 좌우익희생자합동위령제를 제안했다. 좌우익 희생자영령들을 매개로 살아있는 유족과 지역 사회가 모두 함께 해원 상생하는 대동제를 열어보자는 취지였다.
도법스님은 "이 일이 성사된다면 우리사회의 해묵은 좌우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통일을 여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종교인들은 생각만 모아진다면 위령제이든, 추모음악회든, 그밖에 어떤 형태의 문화행사이든 방법을 연구해 볼만하다고 동의했다. 아울러 생명평화를 위한 대전지역 종교인들이 대화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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