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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은 없지만, 상식의 범위 내에서 한 가지 유추를 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즉, 6자회담 등과 같은 남북한 문제는 다름아닌 '이해관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소 낙관적으로 표현하면, 냉전 종식 후 남북한이 통합되어 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각종 이해관계가 상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남북한 통일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고, 여타(餘他) 경우의 수를 고려할 때 우리민족에게 비관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 즉 6자회담, 북핵문제, 미사일 사태, 북한 인권 문제 등을 개별적인 사안이 아닌 상호 긴밀히 연관된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맥락'이란 다름아닌 '이해관계'를 의미한다.

흔히 남한의 언론(특히 보수언론)은 미국, 북한, 외교, 안보 등에 관한 사안들을 파편화해서 보도할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그 배경이나 저변에 깔려 있는 일관된 흐름을 놓칠 때가 많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고의적으로 진실을 왜곡, 은폐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가령 북핵문제, 미사일 사태, 북한 인권 문제 등에 관한 보도를 보면 대부분 "북한이 얼마나 사악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인지"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상식적인 나라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북한의 인권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문제는 그와 같은 보도 행태가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북한의 부정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전체적인 맥락을 놓쳐선 안 된다는 의미다. 즉, 남북한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남한의 언론(특히 보수언론)은 즉각적으로 고정된 프레임(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대화해서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것)으로 이행하는데, 그와 같은 보도 행태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6자회담, 북핵문제, 미사일 사태, 북한 인권 문제 등은 단지 북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거기엔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남북한 당사자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해관계, 좀더 깊이 들어 가면 미국 네오콘의 이해관계, 북한 강경파와 온건파의 이해관계, 남한 기득권층의 이해관계 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따지고 보면 6자회담이란 것도 한반도를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한 제한적 도구에 불과한지 모른다. 단지 북핵이나 미사일, 북한 인권 등의 문제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부시가 등장하기 이전의 상황을 보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고조되고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도 부시의 등장 이후 북핵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북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 과연 무엇이 '본질'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이해관계'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말이다. 북핵 문제, 미사일 사태, 북한 인권 문제 등은 그와 같은 이해관계의 종속변수에 불과한지 모른다. 이를테면 특정한 이해관계 집단이 북핵 문제, 미사일 사태 등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들을 근시안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좀더 거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도식화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남한이 두려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쟁이므로 남한의 이해관계에는 전쟁이란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 사항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일단 북한은 정권 유지가 급선무인 것 같다. 북핵 문제, 미사일 사태 등도 정권 유지를 위해 선택한 카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리고 북한 역시 최악의 상황은 원치 않는 듯하다.

그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이해관계는 무엇일까? 미국은 계속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할 것이고, 중국은 그런 미국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역시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 미국 네오콘, 남한 기득권층, 북한 지도부나 강경파의 이해관계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그야말로 출구 없는 미로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통일'은 출구 없는 미로에서 우리 손으로 출구를 만들어 탈출하는 험난한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설령 출구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출구가 표시된 지도나 나침반, 출구를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이용해 얼마든지 미로를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출구 없는 미로처럼 보여도 분명히 미로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이다. 잠자고 있는 무의식이 아니라 항상 깨어 있는 의식 말이다. 우리가 한걸음씩 통일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식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역학구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의 상호 접점을 모색하는데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남북한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희일비하거나 냉전시대의 프레임에 고착되기보다는 전체적인 이해관계와 역학구도에 입각해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그 이해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예방하고 조금씩 상호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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