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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 동호회와 함께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를 10주에 걸쳐 진행합니다. 세계의 다양한 자전거 문화를 통해 우리 현실을 짚어보는 세 번째 주. 이번에는 서울에서 자전거를 탈지 말지 고민하는 한 시민의 고백입니다. 어렵지만 꼭 타야 한다는 게 그 분의 주장입니다. 탈 수 없는 이유 그러나 타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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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거리에서 자전거를 탄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전거를 못 타거나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자전거를 꽤 탔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낡고 값싼 것이었지만 항상 자전거를 가지고 살았다. 산이 많은 마르부르크에서 두 달간 머물 때도 중고 자전거를 사서 끌고 다녔고, 베를린에서도 그곳으로 옮겨가자마자 당장 자전거를 사서 요긴하게 썼다.
그 때는 자전거를 갖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이만원짜리 중고자전거가 나오면 이런저런 생각 없이 빨리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십여 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자전거를 많이 타자는 이야기만 한다.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만들면 승용차 이용이 줄어들 것이니, 이때 도로 한 차선을 자전거에게 넘겨주자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글로 썼다. 말만 했지 실천은 하지 않은 셈이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몇 해 전 독일의 한 건축가가 서울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나에게 서울 구경을 하고 싶으니 자전거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나는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그는 자전거가 도시를 구경하기에는 가장 적당하고, 자기는 어딜 가든 자전거를 타고 구경한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고, 저녁에 만나서는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꽤 위태로운 작업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도 아마 한국에 오래 머물면 자전거를 계속 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과 비교하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그의 말대로 도시를 구경하기에 정말 적격이다. 자동차는 너무 빠르고 마음대로 세우기도 어렵다. 반면에 걷는 것은 너무 느리다. 하지만 자전거는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오래 멈추어 설 수도 있다. 안전만 보장된다면 도시의 교통수단으로는 아주 적격인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 같은 곳이라면 거의 목숨을 걸고 자동차를 피해가며 타야 하니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이번 6월과 7월에 일본과 유럽에 나갈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들고 나갈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이번에 가면 구석구석 둘러볼 터인데 교통비가 비싼 그곳에서는 자전거가 제격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서울에서도 타겠다는 마음을 먹고 말이다. 그래서 접이식 '버디'(자전거의 한 종류)를 사려고 한참을 여기저기 뒤적였지만 안사람의 반대에 부딪치고 시간에 쫓겨서 다시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파리, 오슬로, 로마, 뮌스터, 베를린, 피사 여섯 도시를 돌아다녔다. 여러 볼일을 보고, 마지막에는 이탈리아 피사에서 피크오일(Peak Oil, 세계 석유 생산 확대 한계점) 회의에 참석했다. 남는 시간에는 주로 자전거를 구경했다. 파리와 로마만 빼고 모두 자전거로 그득했고, 서울에 비하면 자전거 천국 이었다. 오슬로에는 시에서 빌려주는 임대 자전거가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베를린에는 자전거 택시와 철도공사에서 빌려주는 임대 자전거가 가득했다.
그리고 길에서는 남녀노소, 신사숙녀, 국회의원이 탄 자전거가 자동차를 선도하며 질주했다. 뮌스터에서는 풍력발전기를 잔뜩 구경했는데,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오는 길에 주말 자전거 소풍을 하고 나서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를 구경했다. 피사에서는 기울어져가는 탑 옆에서 관광객을 위한 2인승과 4인승 자전거를 발견하고 탑에 들인 것과 비슷한 시간을 투자하여 꼼꼼하게 관찰했다. 거리에는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자전거가 자동차와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도로에서는 자동차만이 아니라 자전거에게도 주차장이 할당되어 있었던 것이다.
양복 입고 자전거 탄 로빈슨, 그는 진정한 실천가
피사에서는 또 하나 큰 충격이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계획했던 일을 이미 다른 회의 참석자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브루스 로빈슨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피크오일 대표였는데 접는 자전거를 피사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양복을 입고 말이다. 그는 고향에서도 거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아이들도 자전거로 등하교를 한다. 피크오일의 해결을 위한 한 가지 실천으로 말이다.
피크오일은 석유생산이 최대값에 이르는 시점을 말한다. 미국은 이미 1970년에 석유생산이 피크에 도달했다. 중동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산유국도 대부분 피크를 넘겼다. 영국,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멕시코는 물론 러시아조차도 이미 피크가 지나갔다. 피크오일 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2010년경에는 전 세계 산유량이 피크에 달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대로 가면 그 후에 꽤 큰 혼란이 도래하리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이미 작년 회의에서 교토 프로토콜과 같은 석유고갈 프로토콜을 전 세계 국가 협약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결의를 했고, 각 국가를 설득하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그 결실의 하나가 스웨덴인데, 스웨덴은 2020년까지 석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국가 목표로 선언했다. 이런 마당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는 탈 수밖에 없었고 석유도 꽤 소비했다.
하지만 다리가 튼튼한 실천가라면 피사까지 와서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로빈슨은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회의는 이탈리아 왕의 사냥터였던 커다란 공원 안 천막에서 열렸다. 그가 묵은 호텔에서 꽤 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로빈슨은 자전거를 많이 타는 것이 피크오일과 석유위기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몸으로 실천한다. 자전거 타기는 육고기 적게 먹기(위험하지 않기에 나도 실천하는)와 함께 글로벌 차원, 국민국가 차원 그리고 로컬 차원에서 모두 석유위기 해결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전거타기가 진보요 혁명이라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필렬 기자는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이자 시민단체 에너지전환 대표입니다. 대안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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