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 다가가는 길은 둘러싼 나무들과 산자락들로 지리산의 큰 숨결이 지척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주차장에 차를 놓고 오르는 길은 위압감이나 경탄보다는 그저 오붓한 산길과 같은 느낌이다.
화엄사의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사천왕문, 보제루 까지 공간은 비스듬한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가는 동안 적당히 길도 경사가 있고 주위 전각도 보여 그 길을 걷다보면 가람의 아늑함에 젖게 된다.
보제루는 좌우로 길게 늘어선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아한 맞배지붕으로 천왕문 쪽에서 보면 2층 누각이나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이다. 보제루는 단청칠도 하지 않고 주춧돌과 기둥을 본래 모습 그대로 사용해 친숙함을 준다. 나무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둥이나 목재를 한번 쓰다듬고 계단을 올랐다. 보제루는 다른 가람의 누각과 달리 아래쪽으로 통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보제루를 돌아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의 좌우로 두 개의 오층석탑이 있으며 정면에는 화엄사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이 왼쪽으로는 각황전이 서로 경쟁하듯 위용을 뽐내고 있다.
동쪽에 있는 오층석탑은 대웅전과 짝을 이루고, 서쪽에 있는 오층석탑은 각황전과 짝을 이루어 각각 하나의 금당에 하나의 탑이 있는 구조를 이룬다는 설이 유력하다. 각각 짝을 이룬 대웅전과 각황전이 그렇듯 두 개의 석탑 또한 그 모습이 사뭇 다른데 대웅전과 짝을 이룬 동오층석탑은 단층의 기단에 장식도 없이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각황전과 짝을 이룬 서오층석탑은 2층의 기단에 십이지신상과 팔부중상 등을 새겨놓는 등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앞마당에서 보는 대웅전과 각황전은 보는 이에게 거대한 산처럼 다가온다.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데다 전각의 크기 또한 작지 않기 때문이다. 대웅전은 뒤로 펼쳐지는 구릉과 멀찍이 보이는 산자락처럼 온화하고 포용력이 있어 보인다면 각황전은 바로 옆에 붙은 산자락처럼 몸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우리 것에, 혹은 문화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왜소해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불룩하게 만드는 것이 배흘림이다.
화엄사의 각황전과 대웅전에도 이와 비슷한 수법이 쓰였다. 중층에 규모도 큰 각황전에 비해 주불전인 대웅전이 왜소하게 보이는 것을 막는 것인데 대웅전 앞으로 난 4중의 장대한 계단, 석축 앞에 가까이 대웅전을 세움으로써 각황전에 위축되는 것을 막았다.
서오층석탑을 한참을 눈길로 쓰다듬은 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각황전 보다는 각황전 앞 석등에 놀라게 된다.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큰 석등이라고 한다. 처음 석등을 대할 때 크기에 놀랐다면 꼼꼼히 살펴볼수록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각황전 석등이 그렇듯 각황전 또한 큰 규모의 전각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중층의 건물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툭 터진 통층 구조로 되어 있다. 각황전은 화엄사 창건때 세워진 것이 아니라 조선 숙종 때 세워진 것이며, 원래는 장륙전이라는 3층짜리 전각이 있고 화엄경을 새긴 돌판이 사방 벽을 두르고 있었다 한다. 화엄경을 새긴 돌판은 현재 약 150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한다.
화엄사에서도 가장 빈번한 통행이 오가는 각황전이지만 각황전의 뒤쪽 공간은 앞 공간과는 달리 포근함과 아늑함을 준다. 뒤쪽 모서리 휘여진 바깥기둥 아래에 앉아 잠시 마음을 추스르거나 앞쪽으로 펼쳐진 화엄사의 전각들과 산자락을 살피는 맛 또한 좋다.
각황전의 또다른 뒤쪽 길로 들어서면 나무에 둘러쌓인 가파르지만 제법 호젓한 계단길이 나타난다. 이 계단길을 오르고 나면 스님상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석등과 네 마리의 사자가 귀퉁이에 앉고 가운데 스님상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네 귀퉁이의 사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네 마리 모두 표정과 자세가 다르다. 혹자는 인간사의 희로애략을 표현했다고도 한다.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는 곳은 소나무숲의 아늑함과 지리산 산자락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엄사의 이곳저곳을 마저 둘러본 후 화엄사 옆을 따라 흐르는 계곡으로 향했다. 주저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도르륵 도르륵 소리를 내어 흐르는 지리산의 계곡은 지친 나의 발과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화엄사를 내려오는 길에는 평안함이 내려있다. 그 평안함이 내 발밑을 스며든다.
덧붙이는 글 | > 저자의 블로그 www.yundol.com에도 실렸습니다.
<찾아 가는 길>
대중교통 :
서울 --> 구례(하루 5회 운행, 소요시간 4:30), 구례에서 택시(061-782-3491,2) 이용 화엄사까지 10분
자가용 :
88올림픽고속도로 남원나들목 -> 19번 산업국도 -> 냉천 삼거리에서 좌회전 18번 국도-> 화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