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두둔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있어서 제일 실패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이종석 장관의 말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장관은 그런 말도 못하느냐"고 옹호했다. "그러면 북한 목조르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일체 오류가 없는 국가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반문해야 한다고도 했다.
논란이 적잖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하지만 다른 쪽에선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하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옳지만 틀리다고 했다. "주권국가의 대통령이나 장관은 어느 나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을 말할 권리가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한 일"이라면서도 "그 말이 자기 나라의 국익에 민감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말하기 전에 몇 번을 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대통령과 장관이 소신 발언을 했다고 문제가 되진 않지만 외교안보 관련 정책을 그렇게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속은 시원할 지 몰라도 뒤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라는 얘기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 누구 말이 맞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허망하다. 탈은 이미 났다.
이미 시작된 북한 목조르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결의문을 채택했고, 미국은 이에 따라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 제재에 이어 수출 봉쇄, 더 나아가 해상 봉쇄를 준비하고 있다.
상황은 이미 국익 또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진행돼 오고 있다. 북한 목조르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미 목조르기가 시작된 마당에 '목조르기를 해야 하냐'고 따지는 것도, 또 그런 따짐이 적절하냐고 운위하는 것도 부질없다. 부질없을 뿐 아니라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자마자 쌀과 비료 추가지원 중단을 공언했고,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그 공언을 몸소 실천했다. 정부가 쌀과 비료 추가지원 중단을 공언한 시점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문이 채택되기 전이었고, 미국의 추가 제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인도주의를 건드렸다. 상황에 구애하지 않고 보편적 인류애에 기초해야 한다는 인도주의를 6자회담 복귀 조건과 맞바꾸려 했다. 정부는 미국이 행동 개시에 나서기도 전에 사실상 대북 제재를 선행했고, 일부 언론은 당연한 조치라고 맞장구 쳤다.
엄밀히 말하면 정부 조치가 더 악성이다. 유엔 결의문은 제재 범위를 '미사일 관련 물자와 자금'으로 한정했지만 정부는 '생존'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그래놓고 '목조르기를 해야 하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건 넌센스다.
제재를 반대한다면 대화 통로를 최대한 열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쌀과 비료 추가지원 중단을 내거는 통에 대화 통로를 스스로 닫는 오류를 범했다. 미국이 일체 오류가 없는 국가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의 오류를 먼저 짚어봐야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엎어진 물 막을 방도가 있긴 한데...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물이 퍼지는 걸 막는 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는 미국에 5자회담 개최를 합의해줬다. 그러곤 "6자회담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5자회담이지 대북 압박을 위한 5자회담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기 나름일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추가 제재가 기정사실이라면 그 속도와 강도를 제어하는 테이블이라도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
이러려면 중국과의 공조는 필수다. 하지만 아니다. 중국은 5자회담을 반대하고 있다. 중국 반관영통신사인 <중국신문사>는 중국 정부가 북한을 배제한 어떤 북핵 관련 회의에 참가할 가능성이 없다고 전했다. 5자회담은 '궐석재판'으로, 판결은 '제재'로 귀착될 공산이 크다고 중국이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보도다.
중국의 태도가 이렇다면 우리 정부는 공중에 붕 뜬다. 중국이 빠진 다자회담은 '궐석재판'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참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앉으면 약속 위반이 된다.
북한 목조르기만큼 중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옥죄이고 있다. 옥죄이다 보니 다리를 힘껏 벌려 양쪽에 걸치고 있지만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어느 한쪽이 풀어줘야 다리를 오므릴 수 있건만 아직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어찌할 것인가?
말이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행동을 보이고 있느냐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