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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국가 원로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속 얘기를 직설적으로, 거침 없이 늘어놓았을까.

그는 한국 가톨릭계의 수장이자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국가 원로의 한 사람이다. 이번 발언에서 김 추기경이 특정 정당(한나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은 균형과 통합으로 상징되는 국가 원로의 기본적 인식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김 추기경 역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사상적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충분히 보장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번 김 추기경 발언에서 문제의 핵심은 그가 한국 사회의 정치·이념적 지형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김 추기경은 이번 발언을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문제점이나 한계 등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한나라당 집권의 당위성과 절박성을 역설했다. 이것은 결국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이념적 노선(반역사적·반민족적·반민주적)에 관해 어떠한 뚜렷한 문제 의식 없이 한나라당의 현 상황을 그대로 추인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 단계 한나라당은 반역사적·반민족적·반민주적 세력(박근혜 전 대표와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지배적인 정치·이념적 정체성이 명확하고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명백한 비극적 후퇴에 다름 아니다.

만약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여 한국의 정치·이념적 지형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현 단계 한나라당은 구시대적 잔존 요소를 확실히 청산하고 보다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민족적인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현 단계 한나라당의 정치·이념적 한계나 문제점에 관해 일체의 지적도 없이 오로지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집착하는 김 추기경을 볼 때, 그가 지향하는 정치·이념적 지향점이 어디인지 분명해진다. 그는 현 단계 한나라당을 정치·이념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반역사적·반민족적·반민주적 세력에 철저히 동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이번 발언에서 김 추기경은 그간 대선에서 내부 분열에 따른 한나라당 집권 실패가 뼈에 사무쳤는지, 한나라당 내 유력 대선 후보 간의 분열을 경계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등 한나라당에 대해 너무나도 자상하고 우정어린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김 추기경의 공공연하고 집요한 집착은 그가 중립과 통합으로 대변되는 국가 원로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마다하고 한나라당의 최고 상임 고문직을 자청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21 세기 한국 정치·이념적 지형이 보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에 대한 김 추기경 등 반역사적·반민족적·반민주적 세력의 초조감과 불안감이 극에 달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김 추기경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부정적 언급과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옹호에 관해 비판적 기조로 일관함으로써 그의 반민족적 친미 사대주의적 성향을 여지 없이 드러냈다.

현재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 패권주의 전략이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안정에 결정적 침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고 철저한 비판과 견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따라서 이 장관과 발언과 노 대통령의 행위는 주권 국가의 통일·외교 정책의 실무 책임자와 최고 통수권자로서 너무나도 당연히 견지해야 할 사안이었다. 도리어 참여 정부의 통일·외교 지도자들이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을 보다 신속하고 철저하며 일관되게 비판하고 견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점을 지적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 한나라당을 정치·이념적으로 주도하는 세력과 이를 추종하는 김 추기경과 같은 반민족적 친미 사대주의자들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한 비판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한미 동맹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이들 숭미 사대주의자들의 속좁고 우매한 발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적 패권 전략에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들 친미 사대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한미 동맹은 미국의 대외 전략에 한국을 철저히 복속시킴으로써 한반도를 미국의 지배 체제에 두려는 반민족적인 신식민지적 종속 관계에 다름 아니다.

무릇 국제 질서에서 건전하고 진정한 동맹 관계는 상호 간 이해·존중·협력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작금의 한반도 정세에서 미국 측으로부터 적절한 이해와 존중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부 당국과 정책 방향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비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니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답답하고 안일한 저자세의 대미 전술에서 탈피하여 이라크 파병 부대, 한미FTA, 한·중·러 우호 관계를 지렛대로 보다 강력하고 공세적인 대미 전술을 펼쳐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기존의 경직되고 일방적인 대북 포용 정책에서 탈피하여 북한이 작금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유연한 대북 견인·압박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본래 김 추기경은 유신 정권 시절을 비롯한 군사 정권 시대에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대표적인 민주 인사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는 민주화 전선에서 급속히 이탈하여 반역사적·반민족적·반민주적 전선의 수장으로 돌아선 느낌이다.

아무튼 이번 발언으로 김 추기경은 중립적이고 통합적인 국가 원로로서의 지위와 이미지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또한 김 추기경으로서는 이번 발언을 통해 그동안 마음 속 깊이 감춰 두었던 자신의 사상적 응어리를 풀고 국가 원로의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서 보다 공공연하고 노골적이며 당파적인(한나라당의 정치 고문으로서) 정치적·이념적 공세에 적극 나설 듯싶다.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반역사적인 인물이 존경을 받아 왔고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 이용길 기자는 고려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증권 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했습니다. 그 동안 여러 대학과 언론 매체에서 강의와 시사 평론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21미래전략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도 마라』(도서출판 T&F, 2005), 『어느 진보주의자의 세상 비틀기』(동성출판사, 2002)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yongkillee.do) 

* 이 글은 <대자보>, <브레이크뉴스> 등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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