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불우함에 맞선 예술혼의 결정체
기자는 이중섭의 불우한 생애와 처참한 삶의 이력에 대해서는 독자들 스스로 책을 읽고 파악해야 할 몫으로 남겨놓을 작정이다. 미술에 관한 책이고 다루는 주제가 이중섭의 그림에 관한 것이기에, 이중섭의 중요한 작품 몇 편에 대한 기자 나름의 인상을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중섭의 작품을 소재별로 구분하면 일제 치하와 분단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민족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소를 비롯해 닭이나 까마귀 같은 새를 그린 그림, 피난 시절 및 정서적 안정기이던 통영 시절에 그린 풍경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제별로 구분할 경우 작품들은 그의 생애의 파고와 부침에 따른 시기적 구분과도 맥을 같이한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수난과 저항 정신을 담은 그림, 분단과 이념의 충돌에 아파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한 그림, 전쟁 후 이승만 독재의 현실을 비판하는 그림, 마사코를 향한 연정과 북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나타내는 그림, 어긋난 운명으로 일본의 가족들과 생이별한 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섭하면 떠오르는 게 소 그림이다. 이중섭의 분신 같기도 한 소 그림은 이 땅의 굴곡진 역사의 분노와 오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책에서 맨 처음 만나는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는 다음에 나오는 '흰 소'나 '떠받으려고 하는 소'와 마찬가지로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대비되며 소의 힘찬 역동성과 힘을 느끼게 한다. 또한 부릅뜬 눈이며 벌어진 콧구멍에서는 대상을 향한 분노와 거친 호흡이 느껴진다.
아마도 분단과 전쟁, 독재 치하에서 살아야 했던 이중섭 자신의 분노이자 저항이었을 것이다. 핏빛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는 이념을 맹신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것이자, 출세를 위해 협잡하는 무리들에 대한 통렬한 일갈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저항이 소의 전신에서 묻어나고 배어난다면, 서귀포 피난 시절에 그린 '물고기가 그려진 소'는 모처럼 찾은 정신적 안정을 반영하듯 순박하고 온순하기 그지없다.
다음에 나오는 '부부' 혹은 '투계'라 불리는 그림을 이 책의 저자는 '봉황'이라 이름 지었다. 기자 역시 이 그림을 보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의 현실, 분단에서 비롯된 이산의 아픔을 느낀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향한 이산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프게 경험한 이중섭이었기에 '어머니가 있는 가족'이어야 온전한 가정이라고 화가는 말한다.
또한 그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생이별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보낸 부인과 자식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았던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닭과 가족', '꽃과 새와 물고기, 끈이 있는 가족'으로 혹은 친구인 소설가 '구상네 가족' 같은 작품으로 태어난다. '달과 까마귀' 역시 가족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고 무엇일까.
엽서 그림 혹은 은박지를 긁고 그 위에 색을 덧입힌 그림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그림들에는 대부분 아이들과 새와 게 등이 등장한다. 이중섭이 꿈꾸던 세상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소박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운명은 그 소박한 꿈마저 이중섭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중섭 작품 속의 인물들은 고개가 모두 젖혀져있거나 꺾여 있다. 좌절된 꿈 혹은 비틀어진 운명의 장난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그의 앞에는 언제나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돌개바람이 불었다. 그가 의도하지 않은 현실들이 그를 정신병자 같은 지경에 빠지도록 몰아갔다. 그래서 그는 똑바로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물들에게 목이 없는 것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져다준 절망 혹은 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기다린다. '세 사람'에서처럼 잠들지 못하고 '소년'에서처럼 그 앞에 난 길에 앉아서.
서귀포 피난시절과 전쟁 후 통영에서 보낸 시절은 모처럼 이중섭이 심리적 안정을 찾은 시간이었다. 그 때 많은 풍경화들이 탄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 특히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남해의 '충렬사 풍경'과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었다. '서귀포의 환상'과 이중섭 그림 중 가장 대작인 '도원'은 바로 그와 가족들이 함께 가고자 한 파라다이스였음이 분명하다.
그림을 보는 눈과 느낌이 다 같을 수도,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발 디디고 섰던 시대 배경 등을 참고삼아 작가의 의도를 훔쳐보려는 노력은 의미 있다 할 것이다.
어차피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들의 것이며 시대가 지나면 지나는 대로 해당 시대의 숨결과 정신에 따라 이해되고 해석되면 족한 것. 그림에 대한 기자의 인상을 감히 드러내는 것 또한 위에서 말한 이유에서 용기를 얻었음이다. 그림과 더 가까워지는 일상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리라 확신한다. 이중섭이 내게 퍼부은 영감의 세례가 여러분의 것이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 꽃으로 그린 악보 | | | 이중섭이 그린 방명록의 그림을 보고 지은 김상옥의 시 | | | |
| | ▲ 김상옥 시집<의상>의 출판 기념 모임에서 이중섭이 방명록에 그린 <복숭아를 문 닭과 게> | | 꽃으로 그린 악보/김상옥
막이 오른다. 어디선지 게 한 마리 기어 나와 거품을 품는다. 게
가 뿜은 거품은 공중에서 꽃이 된다. 꽃은 복숭아꽃, 두웅둥 풍
선처럼 떠오른다.
꽃이 된 거품은 공중에서 악보를 그리다 꽃잎 하나하나 높고 낮
은 음계, 길고 짧은 가락으로 울려 퍼진다. 소리의 채색! 장면들
이 옮겨가며 조명을 받는다.
이 때다. 또 맞은편에선 수탉 한 마리가 나타난다. 그는 냄새를
보고 빛깔을 듣는다. 꽃으로 울리는 꽃의 음악, 향기로 퍼붓는
향기의 연주-
닭은 놀란 눈이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한쪽 발을 들어올린다. 발
까락 관절이 오그라진다. 어찌 된 영문이냐? 뜻밖에도 천도복숭
아 가지가 닭의 입에 물린다.
게는 연신 털난 발을 들고 기는 옆걸음질. 거품은 꽃이 되고, 꽃
은 음악이 되고, 음악은 복숭아가 되고, 그 복숭아를 다시 닭이
받아 무는 - 저 끝없는 여행! 서서히 서서히 막이 내린다. | | | | |
덧붙이는 글 | 이중섭의 그림을 더 감상하시려면 기자의 홈페이지에서 갤러리>>아트갤러리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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