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에 하나다. 너무 순진하거나, 너무 무모하거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어제(3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뉴딜'을 제안했다.
재계가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등의 조치를 취하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이겠다고 했다.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경영권 보호장치 마련 ▲수도권 규제 부분 완화 ▲경제인 대규모 사면 건의 등이 거래품목이다.
우선 각을 잡자. 김근태 의장은 "두려움 없이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두려움을 야기하는 요인 중에는 반대와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각의 반대가 있더라도 그대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옳고 그른지는 따지지 말자. 작심한 사람에게 변심을 요구하는 건 하릴없는 짓이다. 이것만 따지자.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유가 있다.
매력없는 보상계약서
김근태 의장이 재계에 요구한 사항은 하나같이 돈이 드는 것들이다. 그것도 경직성 경비가 천문학적으로 드는 것들이다. 쉽게 나설 리 만무하다.
재계를 움직이려면 두 가지 문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하나는 보상계약서이고 또 하나는 이행각서다.
보상계약서는 이미 제시됐다. 하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출총제 폐지는 정부 여당 내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대체 범위 설정문제만 남았다. 어차피 출총제의 근간은 약화되게 돼 있다.
경영권 보호장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폭을 넓혀 백기사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자칫하면 백기사가 검은 옷으로 갈아입을 수도 있다. 정부 간섭 통로를 여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규모 사면? 어차피 구치소 들어가 봤자 보석 아니면 집행유예다. 게다가 '보장'도 아니고 '건의'다.
수도권 규제 부분완화? 김근태 의장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검토한다고 했으니까 파주LCD 공장처럼 케이스별로 푸는 게 비용이 덜 든다.
'어차피 없어질 당'의 이행각서
백번 양보하자. 보상계약서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치자.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이행각서다. 김근태 의장이 이행각서에 도장을 찍을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김근태 의장은 대통령 내정자가 아니다. 그저 여러 대선주자 중 한명일 뿐이다. 그것도 지지율이 한자릿수에서 맴도는 약체 주자다. 김근태 의장의 이행각서는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근태 의장과 의기투합하면 괜히 '줄서기' 오해를 사고, 그것이 '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근태 개인'이 아니라 '집권여당 의장' 자격으로 이행각서에 도장찍는 거니까 달리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그랬다. "어차피 없어질 당하고 무슨 당 대 당 통합이냐"고 했다. 공공연히 이런 얘기가 나오는 판이다.
이행각서는 '미래의 실천'에 대한 약속이다. 하지만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의 '미래'를 믿기가 힘든 상황이다.
재계에 우호적인 정파가 집권한다면 천문학적인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보상계약서에 나열된 '당근'을 취할 수 있다. 1년 반만 꾹 참고 기다리면 된다. 급할 이유가 없다. 재계에 '덜' 우호적인 정파가 집권한다면 그 때 가서 도장을 찍으면 된다.
'by 김근태 뉴딜'로 정권 'buy'하고 싶겠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김근태 의장이 정말 서민경제 살리기 충정에서 '뉴딜'을 제안한 것이라면 신발 밑창 닳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현 정부와 차기 정부, 여와 야를 넘나들어야 한다. 재계와 대타협을 이루려면 노동계는 고사하고 정치권의 동의부터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 정부와 조율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령 그렇게 했다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김근태 의장이 대권 도전 의지를 버리지 않는 한 '뉴딜', 이른바 서민경제 살리기 '충정'은 대선주자 입지 강화용 '잔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김근태 의장이 순진하거나 무모하다고 지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순진하고 무모한 이유다. 자기중심적이라는 게 문제다.
자신이 충정을 보이면 타인이 따라올 것이란 순진한 믿음. 현 정부와 조율조차 하지 않은 채 "9월 정기국회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호언하는 무모한 일정 관리, 그런 계획과 일정이 먹혀들면 대선주자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전망, 이게 문제다.
김근태 의장이 추진하는 '뉴딜'의 성공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by 김근태' 딱지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김근태 의장은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뉴딜'을 통해 대권을 'buy'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