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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해사 대웅전.
ⓒ 백성태
은해사는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479번지 팔공산 동편 자락에 있다. 신라 현덕왕 원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해안사를 조선조 명종 원년(1546년) 천교화상(天敎和尙)이 이곳으로 이건하여 은해사로 명명했다고 한다.

은해사는 조계종 제10 교구의 본사이다. 이 사찰에는 거조암(居祖庵)을 비롯해 백흥암(百興庵) 운부암 백련암 등 8개의 암자가 있다. 거조암의 영산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목조건물로 국보 제14호이며, 백흥암 극락전과 수미단 운부암 금동보살 좌상은 각각 보물 제790호, 제486호, 제5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천년 가람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 은해사 경내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은해사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관람료를 지불해야 한다.
ⓒ 백성태
은해사 경내를 들어서기 전에 조그만 다리가 하나 나온다. 다리 앞에는 은해사를 찾는 내방객들에게 주차비로 2000원을 징수한다. 징수원의 말인즉, 신도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차비와 관람료도 징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은해사 경내를 들어가려면 다시 경내 입구에서 관람료 2000원(어른 기준)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관람료 앞면에는 은해사의 전경 사진과 함께 "문화재 애호 환경보호"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고, 뒷면에는 "본 관람료는 지정 문화재를 영구히 보존 관리하기 위해 사용됩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 매표구를 들어 서면 바로 앞에 이정표가 보인다.
ⓒ 백성태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 갈림길이 나타나며 이정표 좌측 화살표엔 '사람이 다니는 길', 우측 화살표에는 '자동차 다니는 길'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정문 매표구에서 좌측 길로 접어들면 울창한 송림을 좌우로 만나게 된다. 약 300미터쯤 걸으면 고찰답게 좌측으로 부도(浮圖)를 만나게 된다. 부도 옆에는 은해사의 내력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은해사의 고찰 역사를 알 수 있다. 경건함과 엄숙함을 느끼게 된다.

▲ 은해사 매표구에서 왼쪽길로 300미터쯤 걸어가면 좌측으로 부도가 나온다.
ⓒ 백성태
부도를 뒤로 하고 불과 30∼40미터를 걸어가면 길섶 한 편에 홀로 서 있는 키 작은 석조비를 만난다. 높이 1미터쯤 되어 보이는 석조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大小人 下馬碑", 즉 어떠한 사람이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말이다.

하지만 석조비와 다리 난간 아래로 펼쳐진 광경과 다리 건너 경내에 주차된 차량을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

▲ 부도를 지나 30미터쯤 걸으면 길 한 편에 홀로 서 있는 하마비를 만난다.
ⓒ 백성태
은해사가 언제부터 유원지가 되었는지…, 이름난 사찰의 경내 풍경이라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속살을 드러내며 냇물 바닥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여느 유원지 풍경을 방불하게 한다. 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 도시락을 열어 음식을 먹는 사람, 물놀이 기구를 가지고 와 수영장에 온 듯 왁자지껄 괴성을 지르며 떠드는 아이들…. 누구 하나 나무라거나 제지하는 사람도 없다.

▲ 은해사 대웅전이 바라다 보이는 곳. 냇가에는 어느 유원지 계곡에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 백성태
내방객을 위한 통나무 벤치 옆에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몽땅 담아버린 자동차의 열기 때문에 곁에 앉기 겁이 날 정도다. 나도 질세라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어 물놀이 기구를 꺼내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공공의식과 이기적인 자식 사랑도 한몫하고 있다.

▲ 내방객들의 휴식을 위한 통나무 벤치에는 근접 주차한 차량들이 한낮의 열기를 머금어 숨이 막히고, 그 열기에 땀이 흘러 앉아 있기도 거북하다.
ⓒ 백성태
보화루는 은해사 경내의 대문 격이다. 대웅전의 부처님이 바라보이는 지척에서 남녀노소가 속살을 드러내고 마치 천엽이라도 나온 것 같은 진풍경이 벌어져도 은해사 관계자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멀리서 참배를 위해 방문한 내국인들의 눈살은 차치하고, 경건함과 엄숙함의 기도 도량인 대한민국 사찰에 대한 느낌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 참으로 황망스럽다.

▲ 은해사의 대문격인 보화루 앞에서는 대웅전이 그대로 들여다 보인다. 대웅전 지척의 냇가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유원지에 온듯한 느낌이다.
ⓒ 백성태
앞에서 밝혔듯이 은해사 경내에는 '신도증'을 가진 사람만이 자동차를 운전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은해사 경내 탐방로에 주차된 차량들의 소유자는 모두 은해사의 신도들이라는 말이다. 신도증을 가진 사람들은 특권층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남에게 덕을 베풀고 자비와 솔선과 양보의 불법(佛法)은 은해사에서만큼은 예외인 듯싶다.

▲ 팻말에 쓰여진 경구는 내방객 용이라고 보아야 할듯.
ⓒ 백성태
길섶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진 팻말에 "쇠에서 난 녹이 그 쇠를 먹어 치우듯이 악행은 그 행위를 한 사람을 비탄에 빠지게 한다"라는 문구가 오늘 은해사에서 벌어지는 무질서와 이기심을 대변하는 듯하다.

▲ 물놀이 기구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내는 모습. 미리 준비해 온듯하다. 이곳이 사찰 경내인지 혼란스럽다.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보아 결국 저사람들이 은해사의 신도증을 가진 특권층(?).
ⓒ 백성태
사찰은 먹고 마시고 떠드는 유원지가 아니다. 또한 소속 신도들의 기득권적 특별시혜 구역은 더욱 아니다. 사찰 측의 방임 속에 자연 환경의 훼손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여타 참배객들과 먼 곳을 마다 않고 찾아든 관광객들의 시선조차 외면한 채 일그러진 이기심만 드러내 보이는 그들이 지향하는 극락정토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은해사는 소속 신도들의 독점적 기득권의 특별시혜 구역이 아니다. 은해사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문화 자산이며, 만인의 기도 도량이다. 그러므로 은해사를 찾는 모든 참배객과 내방객 공유의 도량이며 국가 문화유산이다. 환경 훼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엄숙하고 경건해야할 사찰의 경내는 양심의 계율이 지배하는 특별한 성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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