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 사법시험의 합격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라는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등의 기본권의 침해는 사법시험의 선발예정인원 결정, 시험의 공고, 합격자 결정방식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사법시험령 조항들에 의하여 직접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항들 자체로는 아직 청구인들의 기본권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없다."(헌재 2002.02.28 선고)
반면 헌재는 시각장애인에 한하여 안마사 자격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비맹제외기준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을 내렸다.
"안마사의 자격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를 일정한 범위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이른바 비맹제외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하여금 안마사 자격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반인이 안마사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써… 헌법에 위반된다."(헌재 2006.05.25 선고)
같은 사안 판결 엇갈리는 이유... 재판관의 한계 때문
안마사 자격제한에 대해 직업의 자유를 중시하고 있는 헌재가 사법시험정원제의 근거규정에 대해서는 형식 요건을 들어 본안 판단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직업선택의 자유 문제를 놓고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결정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송기춘 전북대 교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분은 철저하게 기본권 논리를 관철하면서도 지배세력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현상유지 쪽으로 가겠다는 헌법재판소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조인만이 재판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은 지배집단의 이익 관철을 위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해석일 수 있다는 설명.
다시 말해 직업선택의 자유에 매우 충실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안마사 문제와는 달리 한국사회 지배세력의 이권과 관련된 사법시험의 경우, 헌재가 소송 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통해 문제를 피해간 것이라는 것.
오는 8, 9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 5명의 교체를 앞두고 후임 인선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인권과 민주 실현을 위한 헌법재판관 임명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연 토론회에서 송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판례에서 재판관이 가지는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의 한계로 ▲국가보안법 등 한국사회 지배집단의 이해를 반영하는 법률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고 ▲국유재산에 대한 시효취득 인정, 토지초과이득세법 헌법불합치결정 등 기본권을 재산권 보장에만 한정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에 적극적이지 못한 점을 꼽았다.
송 교수는 "이러한 경향은 헌법재판소가 외면적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신장에 기여하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결론 냈다.
프랑스, 일본은 비법률가 헌법재판 참여
아울러 일부 헌법재판관의 권위적이고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나왔다.
송 교수는 지난해 3월 김영일 당시 헌법재판관이 퇴임사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지고지선의 결정"이라며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향해 "지각없는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 재판관이 주심을 담당했던 호주제헌법불합치결정은 그렇다 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관련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한 것도 그렇게 지고지순의 결정일까"라고 비꼬았다.
송 교수는 또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로만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헌법재판관 임명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오로지 법률전문가만이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법률규정을 두는 것은 헌법에 반할 여지가 많다"면서 "법관, 변호사, 검사만이 아니라 정치학이나 법학 기타 공동체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살필 수 있는 전문가라면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헌법재판기관도 법률가에 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일본 역시 최고재판소 재판관 15인 가운데 10인은 법관,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중에서 선임되고 나머지 재판관은 법률가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후임 재판관은 사회적 약자 인권에 관심 필요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문제점을 토대로 오동석 아주대 교수가 '재판관 인선의 원칙가 기준'을 중심으로 두 번째 발제에 나섰다.
오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일종의 '헌법재판배심제'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적어도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에 있어서는 일정한 사건들에 대해 정치적 소수자가 자신의 의견 정도라도 밝힐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 교수는 후임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선 원칙으로 인권감수성을 첫째로 꼽았다.
그는 "인권감수성은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구제의 최후 보루로서의 제구실을 하기 위한 전제로서 헌법재판관에게 요구되는 제1의 덕목"이라며 "인권의 문제에 관한 한 사법적극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후임 재판관은 노동자, 농민, 여성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전향적인 논리 개발에 힘을 기울이려는 자세가 검증되어야 할 것"이라며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동성애자, HIV/AIDS감염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