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호주로 이민 와서 성장한 세계적인 슈퍼스타 멜 깁슨(50)이 음주운전과 'F'자가 들어간 반유대주의 발언을 해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X 같은 유대인 놈들(Fucking Jews)"라고 폭언을 한 것.
지난달 30일자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보도에 의하면, 멜 깁슨은 28일 새벽 2시 35분쯤(미국서부 시간) 캘리포니아 주 해안고속도로를 시속 140㎞(제한속도 시속 70㎞)로 달리다가 경찰에 발견되어 긴급 체포됐다. 그는 만취상태에서 과속운전을 했는데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로 법적 허용치인 0.08%를 초과한 상태였다.
단속 경관에게 "너도 유대인처럼 보인다"
그는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이 세상 모든 전쟁의 책임은 유대인에게 있다(The Jews are responsible for all the wars in the world)"라는 말을 내뱉으며 "너도 유대인처럼 보인다"고 했다.
비록 멜 깁슨이 만취한 상태였다고 하지만 최근 레바논을 무차별 폭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반유대인정서(anti-Semitism)가 담긴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개봉하기 직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학살은 크게 부풀려졌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여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유대인들의 개봉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체포 다음날, 멜 깁슨은 "술에 만취해서 큰 실수를 했다"며 "난 호주에서 성장할 때부터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유대인들에게 사과 한다"고 말했지만 호주의 유대인 그룹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1998년 멜 깁슨이 2백만 호주달러를 기부해서 연극전용극장을 건립한 자신의 모교 국립드라마예술학교(National Institute of Dramatic Art. 시드니 소재)의 명예학장직을 박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멜 깁슨은 러셀 크로우, 주디 데이비스, 나오미 와트, 브란체 델퓨제 등과 함께 모교를 빛낸 영화인이다. 이들 5명 모두 아카데미상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이렇듯 호주에서 멜 깁슨의 반유대주의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차별 폭격으로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레바논에 거주하는 호주시민권자들(이중 국적자로 약 2만5000명)을 긴급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호주 거주 유대인과 모슬렘들 사이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멜 깁슨의 발언이 호주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모슬렘들은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멜 깁슨이 오죽하면 그런 발언을 했겠느냐"는 반응을 보인 반면,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후원하는 국립드라마예술학교 출신의 멜 깁슨이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유대인을 배반했다"고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한편 멜 깁슨의 체포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0일에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카나 마을을 무차별 폭격해서 수십 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54명의 레바논 민간인이 살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런 연유로 호주에서는 몇몇 유대인교회(시너고그)가 성난 모슬렘에 의해 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자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시드니 서부지역에 사는 모슬렘들이 파라마타 유대교회 유리창과 차량에 돌멩이를 던져서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성난 모슬렘들은 "카나 마을은 유대인 예수가 순례를 떠나서 첫 기적을 베푼 곳이다, (가나 혼인잔치를 위해서) 그 때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유대인 후손들이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들의 피로 생지옥을 만들고 있다"고 울부짖었다.
반전주의자 아버지 따라 호주로 이민
1956년 미국 뉴욕 주에서 출생한 12살짜리 멜 깁슨은 가족들과 함께 1968년 호주로 이민 왔다. 아버지가 근본주의자 가톨릭(fundamentalist Catholic) 신도여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반대운동을 하다가 호주로의 이민까지 결행한 것.
그의 아버지는 이민신청서에 전쟁반대와 함께 미국사회의 부도덕성을 참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든 TV프로그램의 범람으로 '싸구려' 미국문화의 세례를 받은 멜 깁슨은 순탄치 못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가족의 전통에 따라 시드니 동부에 위치한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다닌 멜 깁슨은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 위해서 저널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누나의 권유로 국립드라마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영화인이 됐다.
이 학교 재학 중에 졸업작품인 소형영화 <서머 시티>에 출연하여 데뷔한 멜 깁슨은 졸업 2년 후에 실질적인 데뷔작품인 <매드 맥스>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호주 영화 <매드 맥스>는 3편까지 제작되어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그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 <매드 맥스> 오디션이 있기 전날 술에 만취한 멜 깁슨은 패싸움을 벌여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호주영화계의 대부 같은 조지 밀러 감독 앞에 섰다. 밀러 감독은 어이가 없었지만 거친 캐릭터의 배우를 찾던 중이어서 그를 주인공으로 선발했다. 촬영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곤드레만드레가 되곤 했던 것. <매드 맥스> 속편에서 멜 깁슨의 적으로 등장하는 가수 티나 터너는 그의 술주정을 참다못해 술 취한 멜 깁슨의 사진을 찍어서 건네주기도 했다고 자서전에다 썼다.
그건 할리우드 데뷔작인 <더 바운티>를 찍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멜 깁슨과 공연한 앤소니 홉킨스는 그의 알코올중독을 치유해주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써야했다. 그러나 호주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에 화려하게 입성한 멜 깁슨은 승승장구했다.
<매드 맥스>에 이어 또 한편의 시리즈물인 <리썰 웨폰>으로 확고한 할리우드 스타 자리를 확보한 것. 그는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95년에는 자신이 감독, 주연, 제작을 맡은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12시간을 극사실의 기법으로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까지 기록적인 성공으로 거두면서 멜 깁슨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 100대 명사' 1위로 뽑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촬영 전부터 미국 유대인 단체로부터 반유대인정서가 배경에 깔린 영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멜 깁슨은 "나는 결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다,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라고 반격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반유대정서' 비난받아
멜 깁슨의 아버지가 1968년 호주로 이민 오면서 이민사유로 말한 '미국사회의 부도덕성'은 변하지 않은 것일까? 호주에서도 술주정뱅이였지만 큰 사고를 친 적이 없는 멜 깁슨은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사고를 저지르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던 멜 깁슨은 1991년에는 알코올중독자 재활모임에 나가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그 효과도 잠시 또 다시 술로 인한 위기를 맞고 말았다. 특히 호주에서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호주출신의 세계적인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유대인 출신)이 소유하고 있는 호주 유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과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연일 멜 깁슨의 뉴스를 대서특필 하고 있다. 머독계 신문들의 부정적인 보도는 불 보듯 뻔한 것.
8월 2일 아침 호주의 <채널7>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의 사정은 더 나쁘게 보인다. 대다수의 미국언론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멜 깁슨 죽이기’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머독 소유의 <폭스TV>가 분위기를 이끄는 추세이고 LA타임즈는 그동안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번 보도에 수평감각을 잃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abc-TV가 멜 깁슨 프로덕션이 제작에 관여하는 미니시리즈의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디즈니 영화사>는 금년 말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멜 깁슨 영화의 홍보를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전 세계의 유대인 그룹이 “멜 깁슨을 할리우드에서 쫓아내라”고 아우성치자, 이미 백배사죄의 뜻을 밝힌 멜 깁슨은 8월 1일 오후에 2차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부도덕한 발언이었다. 인종모독은 용서받을 수 없고, 관용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다.그러나 호주의 한 유대교 랍비는 “멜, 아직도 술이 덜 깼나? 술에 취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속에다 꽁꽁 묶어놓았던 속마음이 그 순간에 튀어나가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이 “유대인들이 설칠수록 멜 깁슨의 파워는 오히려 더 커진다”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결국 그가 2차 사과성명으로 갈무리하는 걸 보면 유대인 그룹의 막강한 파워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보도된 멜 깁슨의 때늦은 한탄이 처량하기까지 하다.
"술과의 전쟁은 매일 이어진다. 오직 내 아내만이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A battle every day, which only my wife can help me 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