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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아버지 집에 건너가서 할아버지 옆에서 하룻밤을 같이 잤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할머니가 주무시던 바로 그 자리에 장롱에서 이부자리를 꺼내 깔고 할아버지랑 같이 잤다.
내가 잠자리에 들었던 밤이 깊은 시각. 안산에 사는 할아버지의 큰 아들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었었다. 할머니가 속이 상해 익산 작은아들 집으로 가셨고 할아버지는 집에 혼자 남으셨는데 걱정이 된다며 어찌 지내시는지 한번 가 봐 달라는 전화를 받고서였다.
내가 전화를 받고 할아버지 집에 건너가 보려는데 아내가 나더러 오늘 밤에는 할머니도 안 계시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자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어 그러마고 대답하고 할아버지 집에 갔던 것이다. 불이 꺼진 깜깜한 할아버지네 집 마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부러 큰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혹시 야밤에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실까봐 골목어귀에서부터 큰 목소리로 여러 번 불렀던 것인데 토방에 올라서서 잠긴 마루문을 두드려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소리를 더 높여 불렀고 아예 문짝이 떨어져 나가라고 마구 흔들어도 봤지만 아무 기척이 없자 순간 내 가슴이 철렁했다.
가져 간 손전등으로 토방을 살피자 할아버지의 하얀 고무신과 지팡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때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에 머리칼이 쭈뼛 섰다. 다시 한 번 더 문짝을 흔들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이~."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지럼증이 났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알루미늄 새시 문짝을 뜯어내야겠다 싶어 문짝을 통째로 비틀어 올렸다.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가 농약을 사다 달라고 아내에게 돈까지 주면서 졸랐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할아버지를 구출해야겠다는 생각과 끔찍한 상상 사이에서 겁이 왈칵 났다.
이때 방에서 불이 켜졌다. 나는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뜻밖의 내 방문에 놀라면서도 크게 반겨 주셨다. 할아버지를 다시 눕게 하고 옆에 쪼그려 앉아 손을 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할머니가 가버리고 없다고 하셨다. 아들네 간 할머니도 마음이 편치는 않으실 거라고 위로 해 드렸더니, “그렇지이~~” 하면서 한숨을 포옥 내 쉬셨다. 할아버지처럼 할머니도 잠을 못 이루시고 계실 거라고 했더니 “그려그려” 했다.
할아버지랑 이런 저런 얘기, 주로 유쾌하고 즐거웠던 추억담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 가고 있는 동안 아들과 딸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들을 위로했다. 나이 잡수시고 몸 불편하면 평소 같지 않게 짜증도 내고 돌출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를 감싸고 이해해야 한다고 해 주었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못 견디고 집을 나갔으랴 싶어서다.
그렇다. 할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에도 병세가 심각했다. 작년 말 경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병세는 악화일로에 있었고 큰소리 한번 안 내던 할머니랑 다투는 소리도 그때부터 듣게 되었다. 마당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앞집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역정 내는 소리에 이어 할머니의 짜증 섞인 대꾸가 나를 긴장시키곤 했었다.
몸의 건강은 정신의 건강과 직결되는 법. 더구나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날로 병약해지면서 귀도 멀고 걸음도 어줍어지자 바깥출입도 잘 안 하더니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갔고 남 보기 창피하다고 아예 방안에 들어앉아버렸다. 할아버지랑 얘기하다 말고 아픈 데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귀가 머신 우리 어머니가 떠올랐다. 늙으신 어머니가 헛소리를 할 때마다 조카들이 까르르 웃어대는 모습도 떠올랐다. 할아버지 몸을 살펴보았다. 머리와 목, 가슴, 팔뚝과 발까지 꺼먼 반점이 번져 있었다. 어떤 곳은 손바닥만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뒷머리만 하얀 곰팡이가 슬었었는데 온 몸에 시커먼 반점이 퍼져 있었다. 아들의 얘기로는 피부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말기. 할아버지만 모르고 계신다고 했다. 병원 입원도 여러 차례 했었고 머리맡에는 진통제와 연고가 수북하였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놓지 않고 하소연을 했다. 윗머리에서 뭔가가 얼굴로 흘러내려서 손으로 닦으려고 하다 보면 아무것도 없다면서 머릿속에 있는 병이 여기저기로 흘러 다닌다고 하셨다. 그것이 이제 가슴까지 내려 왔다면서 가슴을 활짝 열어 보였다.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인자 살만큼 살았고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고 하셨다.
"내가 소원하는기 죽는기여. 그런데 죽지도 않고 이제 나는 들리지도 않아.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여. 인자 인간도 아녀"하고 자탄하셨다.
나는 섣부른 위로를 하지는 않았다. 하나마나한 위로는 그것이 허황되다는 것을 당신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잘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또 무엇보다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냐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듯 수긍하시는 태도였다. 남의 불행을 위안꺼리로 삼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머리와 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받기 위해 일회용 기저귀를 베개에 받쳐두셨고 거기에는 말라붙은 혈흔이 있었다. 머리맡에는 기저귀 다발이 여럿 더 있었다. 주의 깊으신 할아버지는 혹, 주무시다 실수할까봐 요 위에 넓은 비닐을 까셨는데 움직이실 때마다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에 여러 번 잠을 깨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서 보면 방안의 공기가 몹시 탁하고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토방인 내 방에서 자다가 도시 아파트 집에서 잘 때 느끼는 탁한 기운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쇠한 할아버지의 숨과 몸에서 나는 쇠락한 기운이 방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결이지만 할아버지 손을 살그머니 잡아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근데 말여. 어이 히시기. 콩 순 문질러줬어?”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콩을 심고 스무날 쯤 되면 콩 순을 잘라 줘야 하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악의 없는 거짓말을 했다. 콩 순을 다 잘라주었다고 하자 꼭 한마디씩만 잘라내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먼저 일어나셔서 마루에 앉아계셨다. 머리맡에 있던 요강이 안 보이는 걸 봐서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요강을 비우신 것 같았다. 자러 와 줘서 고맙다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어젯밤 아들딸들에게서 전화가 쇄도할 때 할아버지는 당신은 안 들려서 전화도 못 받는다고 귀찮은 듯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면서도 자녀들의 안부전화가 마음에 위안이 되시는지 흐뭇해 하시었다. 내가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누구여? 뭐래?” 하고 관심을 보이곤 하셨다.
밤 내내 “이제는 죽어야는디 죽지도 않는다”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지만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자 아직 누군가에게 잊혀 지지 않고 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존재확인이 되시는지 할아버지 얼굴에는 그런 위안감이 배어났다.
7월 31일 새벽 두 시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내의 노인요양병원에서 아흔 둘의 삶을 마감하셨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날 할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셨다.
덧붙이는 글 | <삶이 보이는 참 8월호에 실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