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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개인(소비자)파산 시행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파산자 숫자가 남성을 추월해 여성 빈곤화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가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개인파산 신청을 접수한 결과에 따르면, 6월에 여성이 146건을 차지해 남성(141건)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근소한 차이지만 남성 경제활동인구(약 1400만 명)가 7대 5로 여성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면, 여성의 빈곤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척도로 볼 수 있다.

특히 여성 파산자(929명) 중 기혼 여성의 비율이 86.4%(715명)에 달하고, 부부 연대보증을 서줬다가 남편의 빚을 갚지 못해 파산자로 전락하는 주부가 늘고 있어 여성 파산자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개인파산을 신청한 348명 가운데 전업주부가 57명을 차지, 비정규직(165명), 실업자(65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남편이 파산하면 가정경제가 무너진다는 ‘가부장적’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 남편의 경제활동을 지속시켜 주기 위해 여성이 대신 ‘파산’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순 한국여성법률상담소장(우비로 법률사무소 대표)은 “빚(채무)은 개인 책임이기 때문에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줄 의무가 없는 데도 많은 여성들이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해 연대보증을 서줬다가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기본적인 신용조사도 없이 무조건 연대보증을 받아주는 금융기관도 문제지만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무모하게 보증을 서주는 여성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재산을 분리 관리하거나 부동산 공동 명의 지정 등 여성이 경제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정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여성파산 해결 특효약은 ‘임금의 정규직화’
취업 늘어도 파산자는 급증. 실질임금 보장으로 빈곤 고리 끊어야

여성 파산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의 정규직화’ 등 경제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6월 현재 여성 취업자는 991만 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20만600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용계약 1년 미만의 비정규직이거나 임금을 받지 않고 남편 등 가족의 사업을 돕는 무급 가족종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여성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성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예비 파산자’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임동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은 "모자가정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채 등 사금융이나 고금리의 신용카드에 손을 벌리게 되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며 "빚을 탕감할 방법을 찾지 못해 이혼이나 도피생활, 심지어는 자살을 선택하는 등 가정 해체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매주 토요일 ‘금융 피해자 파산학교’를 열고 상담을 벌이고 있는 서창호 대구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한다는 것은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이 늘고 있음도 의미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가구주는 2004년보다 31.4%나 증가해 전체 가구의 21.9%를 차지했다.

그는 "문제는 여성 가장 가운데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빈곤층이 22.7%에 이르고, 여성 가장 3명 중 2명은 아예 직업이 없거나 임시직에 종사하고 있다"며 "최근 여성의 파산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여성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고용형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임금의 정규직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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