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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긋 뻥긋 웃는 모습이 예뻤던 뻥순이
뻥긋 뻥긋 웃는 모습이 예뻤던 뻥순이 ⓒ 한명라

뻥순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예진'이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 저의 조카입니다.

언제나 이 못난 언니가 자기보다 더 잘 살기를 마음으로 빌어 주는 우리집의 열두째, 제 바로 밑 여동생의 세번째 아이지요.

'예진'이라는 이름은 제가 지어 준 이름입니다. 동생이 셋째아이를 낳은 후,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야~ 언니가 잘 아는 데 있으면 이름 좀 지어 줘라~"하고 부탁을 해 왔습니다.

사실 우리 승완이, 은빈이도 제가 이름을 짓지 않았는데, 동생의 그 부탁을 어떻게 들어주어야 할지 암담할 때, 우연히 타게 된 택시 기사분께 창원에서 작명을 잘하는 철학원을 여쭈었습니다. 그때 그 기사분이 20여년 전, 자기 아들의 이름을 작명했다는 철학원을 소개해 주셔서 '예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되었지요.

아주 작은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예진이라는 이름과 뻥순이라는, 왠지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예쁜 조카 아가씨도 뻥순이가 주는 다정함이라든가, 그 이름에 담겨 있는 사랑을 알기라도 하는지 뻥순이라고 불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출생신고 기간 이내에 이름을 지어 주기 위해 마음이 바빴던 제가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뻥순이는 이모부의 넉넉한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뻥순이는 이모부의 넉넉한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 한명라
우리집 열두째인 제 동생 뻥순이 엄마는 저보다 키도 훨씬 작고 체형도 작은데, 깡다구 하나만은 저보다 몇 배나 강하지요. 그 깡다구 하나 빼면 체력이 너무도 약한 동생이 세번째 아이를 낳았을 때, 저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동생의 산후조리를 돌봐주지 못하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뻥순이를 낳을 당시 동생의 아파트 뒷편 길 건너엔 작은 공원이 있었고, 그 공원에서 세번째 집에 셋째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그때 두 아들을 다 키워서 큰아이는 삼수 중이고, 작은아이는 고3이었습니다. 또 형부께서는 명퇴를 하시고 개인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뻥순이는 자기 집에서 지내는 날보다 이모집에서 생활하고 자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세 사람의 수험생이 있다고 전화조차도 자중을 했던 친정엄마와 친정의 형제들.

그 집에서의 뻥순이의 위치란, 어쩌면 셋째 형부의 공부나 조카들의 시험공부를 방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묻는 저에게 셋째언니는 오히려 뻥순이가 있어서, 뻥순이가 자라는 예쁜 모습에서 많은 위안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뻥순이네 부엌 창문을 통해서 동생이 셋째언니를 부르면 '오냐'하고 어쩌면 대답을 하고 언니가 나올 정도로 가까운, 길 하나 건너에 사는 언니와 동생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저에겐 얼마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지 모릅니다.

유난히 아이를 좋아하시는 셋째형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거나, 안아 주시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이 넘치고 편안해서 안겨 있는 뻥순이도 친엄마나 친아빠보다 이모부의 품을 더 좋아했지요.

뻥긋뻥긋 웃는 모습이 예뻐서 '뻥순'이라는 촌스러운 예명을 붙여 주신 셋째형부.

지금도 뻥순이 곁에 이모부와 이모가 함께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게 없답니다.
지금도 뻥순이 곁에 이모부와 이모가 함께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게 없답니다. ⓒ 한명라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어도, 술 한잔에 얼큰히 취한 날이래도, 뻥순이가 보고 싶으면 늦은 밤시간임에도 처제네 초인종을 누르고 오늘은 뻥순이가 우리집에서 자야 하는 날이라고 잠자는 뻥순이를 안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불안해서 동생은 오래도록 현관문을 닫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형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언제인가 제가 셋째언니에게 물었습니다. 뻥순이에게 언니가 베푼 것이 많느냐고, 아니면 뻥순이가 언니네에게 베푼 것이 많으냐구요. 언니는 망설임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당연히 뻥순이가 언니네에게 위안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준 것이 더 많다구요.

두 아들의 불안한 수험공부 중에도, 형부의 확실치 않은 자격시험 중에도, 하루하루 커가는 뻥순이의 빵긋빵긋 웃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언니와 형부는 무엇으로 위안을 삼았겠느냐구요. 다행히 그해 언니의 두 아들은 대학에 무사히 입학을 했고, 셋째 형부도 자격시험에 합격해 사무실도 개업을 하셨지요.

제가 보기에 언니와 형부께서 뻥순이에게 쏟아 부은 사랑이 뻥순이를 낳아 준 친엄마, 친아빠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보였는데도 언니는 그런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언니네 사랑을 듬뿍 받고 아무 탈없이 예쁘게 잘 자라 준 뻥순이의 고마움만 이야기를 하십니다.

뻥순이가 처음으로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모부도 아빠였고, 친아빠도 아빠였고, 이모도 엄마였고, 친엄마도 엄마였습니다.

사실 전 그 모습을 보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뻥순이가 자라면 이모부나 이모를 계속 아빠,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텐데, 그때 형부와 언니가 받게 될 정신적인 충격은 어떨지. 머리 검은 짐승 아무리 사랑으로 거두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서운해 하시지나 않을지.

뻥순이에게 쏟아 붓는 그분들의 사랑이 너무도 컸기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뻥순이는 아빠라 불렀던 이모부를 정확하게 "이모부"라고, 엄마라 불렀던 이모를 "이모"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하네요.

물론 엄마 아빠에서 이모 이모부로 부르는 호칭이야 달라졌지만, 뻥순이가 커갈수록 그분들의 뻥순이 사랑하는 마음을 더 잘 아는 탓인지, 그분들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예전보다 더 커졌다고 합니다.

올 여름, 뻥순이는 길러 준 아빠(왼쪽)와 낳아 준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 여름, 뻥순이는 길러 준 아빠(왼쪽)와 낳아 준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 한명라
그후 길 하나 건너에 살던 뻥순이네가 좀 더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먼저 이사를 가고, 셋째 언니네도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토록 제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두 가족의 사랑은 이사를 가거나 말거나 돈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자꾸만 이모부를 찾는 뻥순이 때문에 아침식사 중인 언니네 집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이모부, 빨리 와~" 하는 뻥순이의 단 한마디에 형부는 아침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그 좋아하는 아침 커피도 마시지 않고, 사무실 출근도 미룬 채 뻥순이네 집으로 곧장 쏜살같이 달려 오셨더랍니다.

오셔서 다들 출근들 하느라고 바쁜 그 시간에 놀이터에서 뻥순이와 내내 놀아 주느라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뻥순이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날은 아침 11시가 넘어서야 출근을 하셨다고 하니, 남들 보기에 쉽게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셋째언니네의 뻥순이 사랑은 지극하기만 합니다.

뻥순이를 직접 낳은 엄마 아빠보다 더욱 사랑이 깊은 시선으로 뻥순이를 바라보는 셋째형부를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어쩌면 그리도 부럽고 마음이 뿌듯하던지요.

셋째언니네의 넘치는 사랑과 뻥순이를 낳아 준 친엄마, 아빠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뻥순이는 아마, 그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많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잘 자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참, 뻥순이의 그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해서 셋째형부를 유난히 질투한다는 뻥순이의 친아빠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질투의 화신이기를 포기했다는 소문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뻥순이는 이렇게 밝게 자랐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뻥순이는 이렇게 밝게 자랐습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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