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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최초발견자, 콜랭 드 플랑시>의 첫 화면.HD 화질로 제작.
<직지의 최초발견자, 콜랭 드 플랑시>의 첫 화면.HD 화질로 제작. ⓒ 곽교신
아직도 '직지'를 '직지심경'이란 틀린 명칭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 보여주듯 우리는 직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직지의 발견자인 꼴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프랑스·1853∼1922)가 초대 주한프랑스공사라는 신분으로 직지를 취득하고 본국으로 가져간 경위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기까지의 상세한 경위를 다루고 있다.

플랑시는 '직지'의 약탈자는 아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직지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 중의 한 권인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플랑시도 직지를 프랑스로 반출한 '문화재 약탈자'로만 인식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직지는 플랑시가 구매 절차를 거쳐 프랑스로 가져간 많은 서적 중의 하나이다. 이 프로그램은 직지라는 걸출한 우리 문화재가 프랑스국립도서관 최고의 소장품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플랑시를 직지의 약탈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직지의 가치를 알아본 학자적 눈을 가진 외교관이었음을 냉정하고도 담담히 그리고 있다.

플랑시는 조선 인문학에 많은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그는 역관의 도움이 없이도 조선의 한문서적들을 읽을 정도로 한학에 능통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이런 플랑시를 도와 서적의 중요도를 분류했던 것이 당시의 조선 지식층이었음을 밝히면서, 최고의 문화재를 지킬 여력이 없었던 당시의 사회 환경에 대한 안타까운 술회를 한다.

또 주한공사 재직 중에 만난 조선인 부인과의 각별한 부부의 정을 언급하며, 플랑시가 일찌기 조선과 조선 문화를 사랑한 과정의 하나가 조선 서적의 대량 구입이라는 것과 그 과정에서 구입한 것 중의 하나가 직지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플랑시는 부인이 죽은 후 여생을 독신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랑시는 인쇄출판가의 아들이었다

외교관 신분이었던 플랑시가 어떻게 서지학자를 능가하는 높은 안목으로 직지의 가치를 알아보았는지는 큰 의문이었다. 이 의문을 풀고자 플랑시의 고향까지 찾아가 그의 가계(家系)를 추적함으로써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한 예로 플랑시의 아버지가 인쇄출판업에 종사했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가 당시엔 최고의 지식정보산업이었던 출판업에 종사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플랑시가 직지를 손에 넣자마자 그 가치를 알아봤을 수 있다는 단서가 되고, 추가 추측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사실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플랑시가 인쇄출판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인쇄술의 문화사적 중요성을 부지불식간에 교육받았을 것이고, 이 점이 그가 직지의 가치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파악한 원천적 이유가 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음을 프로그램은 밝히고 있다.

숙명여대 이희재(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직지의 가치를 알아본 플랑시의 안목을 냉정하게 다룬 이 프로그램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14세기 유럽 최고의 지식집단은 수도원이다. 그곳에서조차 필사본이 책의 전부이던 시절에 이미 고려에서 금속활자로 지식의 대량 유통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직지는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들과 더물어 직지의 취득과 소장 경로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직지 관련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이 하나도 없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도 직지의 가치를 알리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직지를 찍어낸 흥덕사지가 있는 청주시는 '유네스코 직지상' 제정 등 직지의 세계화에 이미 적지않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지난 4일에는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직지관련 문화상품 홍보관을 마련하고 "우리가 먼저 직지를 알자"는 청주시의 운동을 서울로 확산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사동에 가면 직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직지의 한글 번역본도 출간되는 등 직지에 대한 관심이 차츰 제 길을 찾고 있는 분위기다.

연출자 남윤성. 자신의 성격을 다혈질이라 말하지만, 침착하고도 집요한 다혈질의 소유자.
연출자 남윤성. 자신의 성격을 다혈질이라 말하지만, 침착하고도 집요한 다혈질의 소유자. ⓒ 곽교신
이런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 재정이 열악한 지방방송국에서 뻔히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그램에 1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붓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실제 이 프로그램의 광고 수입은 약 500만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출자 남윤성은 프로그램 끝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PD로서 회사에 안긴 적자 9500만원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100년 전에 플랑시가 그랬던 것처럼, 직지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강국을 외치는 지금, 아직 국가적 차원의 직지 관련 기념사업은 단 하나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직지의 최초발견자, 콜랭 드 플랑시>는 청주문화방송 홈페이지 -> TV프로그램 -> 특집프로그램란에 가면 다시보기로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방영시간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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