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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9일)은 말복(末伏)인데, 이름 값을 한다고 도시전체가 그야말로 찜통 속 같습니다. 저녁나절에 근처에 사는 작은 처남 내외가 생후 7개월 된 조카 준혁이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아마 어디 외출이라도 하려는 차림새입니다.

"어디 외식이라도 하려고?"
"네, 너무 덥고 복날이라서 삼계탕 집에 가렵니다."

처수(처남댁, 처남의 아내)의 말에 아내는 "조카는 집에 두고 가라"고 하는데, 처남 내외는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오늘이 말복인데, 덕택에 우리도 집에서 대충 닭백숙이나 해먹읍시다."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처제 식구를 부르고는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내가 말을 꺼냈으니 준비도 내가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장에 있는 닭 가게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삼계탕용은 닭1마리에 2500원이고, 백숙용은 1마리에 3500원입니다. 나는 백숙용 닭 5마리와 포장된 황기 뿌리를 2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아내는 닭의 꽁지부분은 잘라내고 손질된 닭 속은 다시 깨끗이 씻어낸 후 칼집을 넣습니다.

▲ 닭백숙 재료. 황기와 마늘.
ⓒ 한성수
"이렇게 칼집을 넣으면 고기가 잘 익을 뿐더러 재료의 향이 잘 배입니다. 원래 백숙을 끊일 때 대추, 밤, 인삼, 녹각 등 여러 가지를 넣는데, 오늘은 당신이 황기만 사왔으니 황기와 집에 있는 마늘만 넣고 만들겠어요. 오히려 여러 재료를 넣는 것보다 깔끔한 맛을 낼 수도 있어요."

아내는 찜통에 닭을 넣고 살짝 끓인 후 닭을 삶은 물은 부어버립니다. 그리고 닭을 다시 물에 씻습니다. 의아해서 쳐다보는 내게 아내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기름이 너무 많으면 싫어해서 기름을 제거하는 겁니다."

아내는 이제 닭에 황기와 마늘을 넣고 푹 삶습니다. 드디어 백숙이 상에 올려졌습니다. 아내의 설명처럼 닭고기가 담백해서 아이들도 부지런히 먹습니다. 처제 내외는 닭 날개를 서로 먹겠다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오히려 닭 날개를 내게 내어줍니다. 바람이 나도 좋다는 것인지, 당신 능력에 무슨 바람이냐는 의미인지, 그 만큼 믿는다는 뜻인지, 아내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좋게 해석하렵니다.

▲ 완성된 닭백숙.
ⓒ 한성수
닭고기가 순식간에 없어지자, 아내는 다시 부엌으로 향합니다. 아내는 냉장고에서 당근과 사과, 표고버섯과 대파를 꺼내어서 각 잘게 저밉니다.

▲ 닭죽재료.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당근, 사과, 대파, 표고버섯.
ⓒ 한성수
"사과도 넣어요?"
"아이들은 닭고기 냄새 때문에 닭죽을 좋아하지 않는데, 사과를 넣으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아내는 불린 쌀(제 불찰로 시장에서 찹쌀을 사가지 않아서 쌀을 사용했습니다)과 저며 놓은 당근과 표고버섯, 대파와 사과를 닭 국물에 넣고 불을 올립니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자 불을 맞추고 주걱으로 한참을 젓습니다.

"이렇게 계속 저어야 죽이 걸쭉해져서 차지고, 고소해서 아이들도 잘 먹어요."

▲ 맛과 영양 만점의 닭죽.
ⓒ 한성수
드디어 죽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내의 권유로 후추를 조금 넣어서 먹는데, 고소하고 담백해서 아이들도 후르르 그릇들을 비워냅니다.

7개월 된 준혁이도 제 고모가 입에 넣어주는 죽을 넙죽 넙죽 잘도 받아먹습니다. 그릇이 줄을 서고 금세 죽이 바닥을 드러내자 아내는 행복한 푸념(자랑)을 늘어놓습니다.

▲ 닭죽을 먹는 준혁이(생후 7개월).
ⓒ 한성수
앙증맞은 준혁이의 재롱과 아내의 우스개 소리에 세 가족의 웃음이 창문을 넘습니다. 2만원의 재료비로 집에서 간편하게 만든 말복 보양식 닭백숙과 닭죽 덕택에 오늘 저녁만큼은 우리 가족에게 말복 더위가 저만치 물러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의 제 블러그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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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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