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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자료사진). 각종 할인판매 문구가 소비자를 유혹한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자료사진). 각종 할인판매 문구가 소비자를 유혹한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아침밥 먹기 바쁘게 부랴부랴 애들을 챙겼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하니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나의 손놀림은 모터라도 달린 듯 분주해진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두어번씩 장을 본다. 평소 간단한 부식이나 생활용품은 근처 슈퍼에서 그때 그때 사다가 쓰지만 부피가 크고 금액도 만만찮은 것들은 미리미리 적어두었다가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할인점)를 이용하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이다.

[출발] 재래시장으로 가고싶지만, 한낮 기온은 30도

살 것을 적은 메모지와 장바구니, 시원하게 얼린 물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정류장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재래시장으로 갈까? 대형마트로 갈까?

이제 막 낳았다고 후후 불어가며 들고 나오는 싱싱한 계란에 실금 간 계란까지 덤, 아직도 퍼덕대는 닭을 사고, 게다가 2000원만 있으면 장정도 배를 두드리고 남을 만큼 싸고 맛좋은 어묵을 먹으려면 재래시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어묵 하나 먹이려다가 아이들에게 더위 먹이기 딱 좋을 것 같다. 또 덥다고 물을 자꾸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생리현상을 해결할 곳이 시장에는 마땅치 않다.

시장에는 왜 화장실이 없는지. 에어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늘막이라도 있었으면 좌판에 앉아 야채다듬고 콩까는 할머니들의 풀물 든손에 1000원짜리도 쥐어드릴 수 있을 텐데….

서울의 한 재래시장(자료사진)
서울의 한 재래시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더위 때문에, 골목마다 누비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먹을거리를 구경하고 살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못 보게 된 것은 아쉽지만, 대형마트로 가는 버스에 오른 나는 그나마 사야 할 품목이 대부분 공산품임에 서운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충동구매.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충동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필요한 품목만 메모지에 적어가지만, 막상 '한정세일' '하나 사면 하나 더' 등 매혹적인(?) 문구 앞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충동구매! 오늘은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보자!'

[마트 도착] 알뜰주부의 철칙, 질보다 양!

대형마트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더 신났다.

하긴 이렇게 더운 날 차비 몇백원만 들이면 하루종일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온갖 편의시설들이 있고, 또 엄마의 기분만 허락한다면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더불어 만화영화 한 편쯤은 서비스로 볼 수 있는 곳이 대형마트니 아이들이 반길 만 하다.

아이들의 기대가 그렇다 치더라도 난 내 볼 일을 봐야 했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지하에 자리잡은 슈퍼였다. 작은아이를 쇼핑카트에 태우고 매장을 돌면서 메모지에 적힌 것들을 찾아다녔다.

화장지는 세일 중이고, 곽티슈는 '플러스 2' 행사 중이라 같은 금액으로도 두 개를 더 얻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섬유린스 또한 같은 종류의 다양한 제품들이 한 곳에 진열되어 있으니 가격과 품질 면에서 내 입맛에 꼭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내 입맛에 맞는 제품'이란 대부분 금액에 비해 많은 양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새로 나온 신상품은 외면당하기 일쑤지만 말이다.

쇼핑카트에 올라 대형마트를 누비는 아이
쇼핑카트에 올라 대형마트를 누비는 아이 ⓒ 주경심
[쇼핑 한바퀴째] 단돈 천원의 '수요대혁명'... 그래도 이정도면 경제적

그렇다고 내가 항상 현명한 쇼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대형마트는 수요일마다 '수요 대혁명'이라는 타이틀로 웬만한 생필품을 무조건 1000원에 파는 행사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요즘은 애들도 갖다버린다는 천원으로 생필품을 골라가며 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지난번에도 굳이 필요없는 것들을 두개, 세개 샀다가 결국 다 못쓰고 버리고 말았다. 그 때 다시는 충동구매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이것저것을 또 골라 담고야 말았다.

그러나 계산대에 다다를 때까지는 이것이 충동구매인 줄 절대 모른다. 계산기에 찍히는 금액이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야만 정신을 차리고 충동구매에 후회를 하는 것이다.

물론 영수증만 있으면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사이에는 언제든지 교환이나 반품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상하기 쉬운 음식물이나 이미 사용한 제품은 교환이나 반품 자체가 어렵고, 한 달에 두어 번 오는 탓에 귀찮아서 반품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계산된 금액은 총 3만2000원! 집에서 미리 뽑아본 금액에서 1000원 정도가 초과된 금액이지만, 이 정도면 경제적인 쇼핑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계산된 금액만큼 포인트 적립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포인트라는 것이 워낙 적어서 언제쯤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배달요청] 쇼핑은 끝났어도 나를 붙잡는 에어컨 바람

물건이 가득 담긴 카트를 밀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배달요청하는 곳이다. 모든 할인매장이 같은 건 아니겠지만 내가 다니는 대형마트는 구매금액이 3만원을 넘으면 가정으로 직접 배달까지 해주고 있다.

양 손에 가득 봉지를 들고 아이들까지 달고서 버스를 타야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재래시장보다는 대형마트를 찾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물건까지 배달시켜놓고 나니 출출함이 밀려왔다. 입맛대로 취향대로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식당가에서 아이들은 자장면, 나는 냉면을 시켜 시원함을 만끽했다.

이것으로 나의 쇼핑은 모두 끝이 났건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영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큰아이에게 꼭 한번은 보여주고 싶었던 만화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 것도 쉬이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이유였다.

아이를 데리고 대형마트 지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표를 끊어 큰아이만 영화를 보게 하고 나와 작은아이는 다시 대형마트 매장으로 왔다. 깜빡 잊고 사지 못한 물건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노느니 염불하는 마음으로 심심하게 2시간을 죽치고 있느니 눈이라도 즐거워지자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쇼핑 두바퀴째] 여름상품 대대적 세일... 스르륵, 지갑이 열린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고, 여름상품들이 대대적인 세일판매를 하고 있었고 여름의 초입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놨던 티셔츠가 그 곳에 떡 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눈가는 곳에 손이 가고, 손가는 곳에 지갑이 열려버리니 계획에도 없는 티셔츠를 두 벌이나 사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제값보다 20%나 싸게 샀으니 횡재한 거 아닌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런데 더운 날씨 때문인지, 잠시나마 누린 호강에 본분마저 망각해버린 건지. 길을 건너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서 내려 또 다시 10여분을 걸어가야 하는 그 과정을 '택시'라는 간단하고 명쾌한 교통수단으로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버스비에서 800원만 더 보태면 되잖아!'

100~200원 아끼자고 대형마트까지 온 계획이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택시 안도 할인마트만큼이나 시원했다. 하지만 집 앞에 도착해서 택시비를 내려는 순간 난 용광로 같은 화끈함을 맛봐야 했다. 집을 나설 때 빳빳하게 세어넣은 지폐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소매치기를 당했나? 아니면 돈을 흘려버렸나?'

택시비는 결국 가까운 문방구에 들러 빌려서 지불해야 했다.

[귀가 후 지출내역 계산] 아아~ 산산이 흩어진 보름간의 궁상

대형마트에서 집으로 배달 온 물건들.
대형마트에서 집으로 배달 온 물건들. ⓒ 주경심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도 못 벗은 채 마치 도둑 맞아버린 것 같은 지갑을 메우느라 계산기를 꺼내 지출 내역을 두드려봐야 했다. 물론 도둑은커녕 내 화려한(?) 지출 내역이 텅 빈 지갑을 증명하고 남았다. 계획에도 없던 영화, 티셔츠, 식사, 커피….

근 보름에 가까운 나의 악착과 계산과 알뜰은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해면처럼 흩어져 버린 것이다. 결국 난 하루의 호사로 앞으로 또 보름을 궁상·진상·속상함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 우리 내일도 대형마트 가요!" 한다.

다음에는 절대로 충동구매하지 않겠다고 미리 각서라도 쓸까? 아니면 좀 더 세게 "나는 살림 못해!"라고 '주부 사표'라도 던져버릴까? 에어컨 바람과 편리한 부대시설 뒤에 이렇게 힘없는 주부의 모습이 있으리라고 감히 그 누가 상상을 하겠는가?

그래도 난 오늘도 장바구니 수호를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메모하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나는야 장바구니를 지켜야 할 대한민국 주부니까!

덧붙이는 글 | [알림] <오마이뉴스>에서 '알뜰하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세요. 우리 집 장바구니 엿보기부터 알뜰살림 지혜, 쇼핑 체험 등 생생한 생활 정보가 담긴 글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생활경제 현장에서 뛰고 계신 시민기자와 독자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생활경제 담당 sean@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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