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 떡 하니 고층건물이 올라왔다고 가정해보자. 멀리 시원스레 보이던 산 혹은 공원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해가 들지 않아 뽀송뽀송하게 마른 빨래나 이부자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불편은 집값 하락이라는 경제적 피해로 연결된다.
최근 들어 이러한 상황에 맞딱들인 거주자들과 건축업체 사이에서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조권과 조망권에 대한 분쟁 말이다.
이승태 변호사는 지난 18일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여름 특강 '우리시대 삶의 공간, 아파트' 마지막 강의에서 '빛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일조권과 조망권에 대한 강의를 펼쳤다.
이 변호사는 "최근 들어 기존의 저층 주거용 건물을 고층아파트 또는 고층주상복합아파트로 재건축(재개발)하거나 신축하는 행위가 빈번해지면서 기존의 단독주택 또는 공동주택은 일조량과 조망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조권은 말 그대로 햇빛을 볼 권리를 말한다. 신축건물이 내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막으면 일조권을 침해한 것으로 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이 변호사는 "실제로 고층건물로 인한 일조권, 조망권 및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한 분쟁이 증가하여 한해 법원에 접수되는 소송건수만도 1천여 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또 "점차 열악해지는 자연적 환경 속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주거환경에는 일조, 통풍, 정온, 청정한 대기, 조망, 압박감 없는 상태 등 자연적 환경이익이 포함된다"면서 "이러한 환경이익이 인위적이고 무분별한 건축행위 등으로 부당하게 파괴되고 있지만 일조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현재로서는 단지 대법원 판례를 의존하여 일조권침해 여부 및 기준을 판단해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조권과 관련된 현행 법령으로는 건축법 제53조, 건축법시행령 제86조, 서울특별시 건축조례 제60조 등이 있다. 위 법령에서는 전용주거지역 및 일반주거지역 안에서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고, 정북방향의 인접대지 경계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조망권과 관련하여서는 건축법 등 관계법령에는 아무런 법률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일조권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일조권 보상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변호사는 "소송자체도 어렵지만 소송에서 이겨도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집값의 5%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일조권 소송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고 전했다.
일조권에 대한 기준 문제는 법이 일조방해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보상의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어서 원고측과 피고측의 공방이 이어지기 일쑤다.
이 변호사는 "일조권이 침해당해 소송을 할 경우, 위법한 침해를 입증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게 되는데 시뮬레이션 결과 또한 업체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한 "토지와 건물의 가치 하락, 영업수익 감소, 광열비 등의 지출 증대, 정신적 손해 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와 인접한 일본의 경우는 1976년의 건축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주거지역에서 중고층의 건축물에 의해서 생기는 일영(日影)을 일정 기준치 이하로 규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건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신축건물로 인하여 장차 주변건물에 미칠 일조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하고 그 일영도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우리의 건축법은 일본의 법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무방한데 왜 본받아야 할 부분은 빠져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조권의 보호와 관련된 법률적 근거,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 기준 등에 관한 학문적 논의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무상의 판례도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해 서로 상반되는 판결이 속출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일조권 보호를 위하여 가장 시급한 것이 일조권에 관한 현실성있는 법률의 제·개정"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처럼 우리나라도 건축법을 개정하여 현재 일조침해의 수인한도 기준에 부합하는 정도의 일조보호를 위한 사선제한, 건축시 일조분석자료의 제출을 의무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건축관계법령을 조속히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축주나 시공회사에서도 당초 건축설계단계에서부터 건물의 신축으로 인하여 인근 주민들에게 미칠 일조, 조망의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여 일조권 등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건축물의 효율을 높이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와 같은 법조인들의 열린 발상이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예술전문 웹진 컬쳐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