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 15일이면 그 날의 의미가 더욱 남다른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퇴촌의 원당리에 자리잡은 <나눔의 집>이 그곳이다. 그곳에선 일제시대에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젊음을 송두리째 짓밟혔던 할머니 아홉 분이 생활하고 계신다.
올해 8월 15일에는 그곳에서 '뿌리와 한'이라는 주제로 할머니들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강제동원의 과정을 따라가 보는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기획전을 시작하는 날, 사람들을 초대하여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아름다운 재단 박원순 변호사는 몸이 아파 링거를 꽂고 방에 누워 계신 김군자 할머니를 찾아 뵙고 건강 회복을 당부했다. 김군자 할머니는 자신에게 나오는 돈을 모은 5천만 원을 최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셨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한가운데 자리한 광장에는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1945년 해방의 날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북적거림으로 기쁨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해방의 날엔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애국가를 부를 때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으며 애국가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구름도 함께 목청을 높이는 듯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5년이 넘도록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요집회를 가지며 일본측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측의 태도가 할머니들의 얼굴을 웃음 대신 어둔 표정 속에 가두어 버렸다. 게다가 올해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더더욱 할머니의 얼굴에 더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나눔의 집> 홍보대사인 방송인 김미화씨는 인사의 자리에서 "키가 작아서요"라는 말과 함께 발을 돋우고 얘기를 하여 어둡던 분위기에 잠깐 웃음을 선물했다. 그는 키가 작다고 말했으나 할머니들이 보고 싶어한다는 말에 시간을 쪼개 달려온 것을 보면 결코 키가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커 보였다.
이날도 일본인 손님들이 많았다. 일본의 니카타에서 온 국제정보대학의 평화학과 2학년 학생들도 그 중의 일원이었다. 학생들을 이끌고 온 교수님은 "니카타는 동해가 마주 보이는 곳"이라고 소개한 뒤 "이곳을 다녀가면 학생들의 역사 의식이 바뀌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92년 한국 여인과 결혼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하시모토 미쯔지로씨는 "고이즈미가 8·15에 찾아가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며, 이곳에 와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것이 그날 그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이 과거 할머니들께 저지른 일에 대해 사죄했다.
아무도 그들이 일본인이라고 돌을 던지거나 야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진심으로 사죄할 때 함께 박수를 쳐 그들의 용기를 성원해 주었다. 사죄가 있는 자리에 용서가 있었으며 용서는 화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배워야할 것이 바로 그것인 듯싶었다.
이용녀 할머니께서는 옷을 곱게 차려 입으셨다. 기획전의 사진이 영 마음이 들지 않는 눈치였다.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찍어서 영 품위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운 옷으로 매무새를 만진 오늘의 자태를 사진에 담아드렸다. 할머니는 여전히 여자였다.
할머니들께서 날씨가 더운 탓에 식사후의 뒤풀이 자리에는 많이 나오질 못하셨다. 이용녀 할머니와 박옥련 할머니 두 분이 관객이 되어 주셨다. 하지만 두 분의 관객에도 마다 않고 광주 중앙고와 양평 양서고의 학생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관객보다 공연자가 훨씬 더 많았다. 지나친 관객 수의 부족으로 인하여 분위기가 뜰 낌새를 보이지 않자 양평의 양서고 학생 한 명이 '소양강 처녀'를 신나게 불렀다.
그 노래가 할머니의 흥을 일으켜 세웠다. 이용녀 할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해방의 날은 아마도 이런 흥과 함께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방의 날이란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사죄하고 배상하고, 피해자들이 그들을 용서하며 함께 화해의 춤을 추는 날이 아닐까. 그러나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자꾸만 이런 흥을 깨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울한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학생들이 오늘 그 흥을 되찾아 할머니께 드리고 있었다.
'뿌리와 한'의 기획전 소개 책자를 들여다보며 한 방문객이 박옥련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요게 바로 나잖여"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였다. <나눔의 집>에 오면 단순히 할머니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아픈, 그러나 살아있는 우리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