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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방문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5일 저녁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호주를 방문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5일 저녁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윤여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최근 외교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7월 25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1차 예비투표(straw poll)에서 1위를 차지하여 국내외의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국가원수의 예우와 교황의 권위'를 누리고 미국 대통령에 버금하는 지명도를 갖게 되는 유엔 사무총장 직분은 한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출신국가의 자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반 장관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가 거론될 정도로 국민적 성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 장관은 8월 7일 일본을 방문하여 다음날 열린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고 이어서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를 공식방문 했다. 그는 5개 국가를 순방하면서 각국 정상과 외무장관을 만나는 등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8월 16일 아침 귀국길에 올랐다.

겉으로 드러내놓은 행보는 아니지만, 방문외교 및 현지 통상업무 지원과 더불어 유엔 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지지약속도 받으려는 '양수겸장' 외교일정으로 보인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반 장관의 호주에서의 일정은 시간단위로 쪼개진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 국민을 무시했다"

반 장관은 지난 8월 9일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시 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역사문제로 양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아베 장관이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한 것.

반 장관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간 동안에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더 이상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하게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두 번씩이나 전달한 강한 메시지가 무시된 탓인지 8월 15일 저녁 시드니에서 만난 반기문 장관은 평소의 차분하고 목소리의 톤이 낮은 모습과는 달리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반기문 장관은 8·15 광복절을 맞아 호주 수도 캔버라로 가서 마이클 제프리 호주 연방총독과 존 하워드 호주 총리, 브렌단 넬슨 국방장관을 만나고,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 캐빈 러드 야당 외무장관(그림자 내각)을 만나 공식회담을 가졌다.

일정을 다 마친 후에 호주언론과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반 장관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이웃국가의 경축일에 신사참배를 강행한 것은 한국 국민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며, 매우 실망스럽고도 분개스러운 일"이라고 말한 것.

"유엔 총장, 조심스럽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 윤여문
16일 새벽 시드니 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인 반기문 장관은 15일 밤늦은 시간에 가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고미즈미 총리를 성토하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물 한 잔으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15일 낮에 논의된 한국-호주의 외교현안과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북한 미사일발사 문제 등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특히 존 하워드 총리 등 호주 정계인사들이 보인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무척 고무된 듯한 모습도 감추지 않았다. 하워드 총리의 언급이 의례적인 덕담수준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장관은 호주방문 첫날인 8월 13일 저녁, 시드니 주재 지사·상사 대표들과의 만남에서도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방문결과를 말하면서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조심스런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반 장관은 8월 14일, 호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시드니 소재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가 주최한 '반기문 장관 초청 연설'에서도 자신의 경력과 식견을 알리는 코멘트를 했다.

연설이 끝난 다음 그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40년 경력의 외교전문가"라고 소개한 다음 "오랜 기간 동북아에서 다자외교를 체득한 내가 유엔사무총장의 적임자"라고 말해 유엔사무총장을 향한 강한 의지가 담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반기문 장관과의 인터뷰는 개략적인 서면질의서를 먼저 전달한 다음 직접 질의응답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꽉 짜인 일정 때문에 약간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성실하게 답변해주었다. 다음은 반 장관과의 일문일답.

"전작권 이전, 미국은 자연스런 흐름으로 본다"

반기문 장관이 14일 호주의 로위연구소에서 초청 연설하고 있다.
반기문 장관이 14일 호주의 로위연구소에서 초청 연설하고 있다. ⓒ 윤여문
- 호주에서의 일정은 어떠했는지요?
"호주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호주, 특히 시드니는 올 때마다 새롭고 유쾌합니다. 2002년 첫 방문은 유엔총회 의장비서실 실장의 신분으로 방문했습니다.

이번에 와서 호주 정계지도자들을 만난 것도 외교적으로 유익했지만 한인동포들과의 만남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특히 로위 연구소에서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호주지도층과의 만남과 의견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사실 호주가 이번 순회방문의 마지막 국가여서 조금 여유 있는 일정을 기대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조창범 주 호주대사와 김창수 주 시드니총영사가 현지외교업무 지원을 요구하는 숙제를 잔뜩 주어서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제일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웃음)"

- 오늘 캔버라에서 만난 호주 정계지도자들과 주로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한반도 문제, 한·호주 협력관계,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야기된 한반도에서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어떤 방식으로 협의해서 속개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많은 의견교환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호주는 국제무대에서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엔에서 뿐만 아니라, APEC 같은 기구는 두 나라가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낮에 만난 존 하워드 총리는 만나자마자 유엔 사무총장 진출에 관한 대화를 꺼내면서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도 마찬가지였고요."

- 장관께서는 8월 13일 저녁 시드니 주재 지사·상사 대표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에 대해 자신감을 피력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8월 7일부터 시작된 일본-페루-아르헨티나-뉴질랜드-호주 등 5개국 방문에서 어떤 반응을 얻으셨는지요?
"아주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사실 지난 7월 25일 1차 예비투표 결과를 보고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물론 나 자신도 놀랐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여 우리 스스로를 낮게 평가해온 반면에, 국제사회는 오히려 우리의 눈부신 발전상을 크게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 오히려 국내에서의 우려가 더 큰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몇몇 외교부 선배들조차 북한문제가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일부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과 일본 등의 반대로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작전통제권 환수와 그에 따른 반미시위 등으로 부정적인 예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미국의 협력관계는 아주 공고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 8월 13일 행사에서 장관께서는 한국과 미국의 위상이 재정립 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셨는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면서,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진데 따른 현상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이 결정하면 한국은 마땅히 따라야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결정을 존중하되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는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봅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미국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도 그런 관점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그건 주한 연합사령관, 미 국방성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도 확인했던 내용이고, 최근에는 주한 미국대사도 확인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도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신 바 있는데요, 전시작전권 문제는 1988년부터 두 나라 간의 논의가 됐고, 1994년에 평시작전권은 환수 됐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국민들의 불안감 표출과 반대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 당시 미주국장으로 그 문제에 관여를 해서 잘 알고 있는데, 한·미 양국은 한국의 안보를 철통같이 한다는 대전제 하에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안심하셔도 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는 반기문 장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는 반기문 장관.
- 유엔 사무총장 진출에 관해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서 한 표라도 반대표가 나오면 사무총장이 될 수 없는데 1차 예비투표에서 나온 반대표 하나가 그 중의 하나라면 아주 불행스런 일인데.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표가 상임이사국 중에서 나온 표라고 할지라도 오는 10월 중순까지 반복해서 이어지는 예비투표 기간에 한국의 발전된 위상과 나의 진면목을 겸손하게 보여준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역량과 위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한국·호주FTA, 한국·미국FTA에 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캔버라를 방문하는 동안에 한국·호주FTA협상에 관한 논의는 없었는지요?
"물론 있었습니다. 호주의 입장은 한국·호주FTA 협상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미국과 FTA협상을 추진하고 있고, 또한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농업분야 수출이 큰 나라와의 협상은 아주 민감한 사안이 많아서 점진적인 협의를 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 2005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호주·미국 FTA (AUSFTA)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There is no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provision in the Agreement'. 이는 NAFTA 11조 조항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를 호주-미국 FTA협정에서 제외시킨다는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일부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NAFTA 11조는 한국-미국 FTA에서도 제외되어야 할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미국 2차 FTA협상이 끝난 지금까지 이 문제는 합의된 바 없는데, 반 장관님께서 이 조항을 제외시킨 유일한 국가인 호주를 방문하시는 중이니 이 조항에 관한 반 장관님의 견해와 앞으로의 협상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NAFTA 11조 조항에 관한 논란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협상대표들이 심도 있게 논의하는 중이고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호주·미국FTA협정에 그 조항이 빠진 사례도 충분히 검토했기 때문에 오는 9월 6일부터 4일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한국-미국 FTA 3차협상에서 잘 활용할 것입니다.

이번 로위 연구소 국제정세 포럼에서도 논의된 사항이지만, 한국·미국FTA 협상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2007년 안에 타결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합의도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또 한 가지 내용이 북한 개성공단 문제였습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로 개성공단 문제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물었는데, 나는 '두 갈래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강력한 경고를 통해서 압박하되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한다는 겁니다.

아직은 한국·미국 FTA협상에 개성공단 문제가 아젠다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3차 협상부터는 포함될 것입니다. 미국 측에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리라고 기대합니다."

지난 15일 열린 한-호 외무장관 회담 모습.
지난 15일 열린 한-호 외무장관 회담 모습. ⓒ 호주 외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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