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은 한마디로 '침략성 폭력 행위'이다.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그들의 넋을 기리는 일본 총리의 행위를 본 아시아의 수많은 전쟁 희생자들의 속내가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는가. 과거 침략 만행의 잘못을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이를 미화하고 영웅처럼 떠받들다니, 희생자들이 애써 잊으려던 아픔을 마구 들쑤시는 '야만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일본 총리의 참배가 우리 국민감정을 심대하게 손상시킨 일로서 우리 정부와 국민은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도 "국제 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인류의 양식을 짓밟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안에서도 "일본의 아시아 외교가 붕괴에 가까워졌다"고 비판한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을 비롯해서 각 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차기 총리 유력한 아베 장관도 '대외 강경파'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자세다. 일본의 침략성 폭력의 오만은 결코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우선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격으로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8·15 참배를 명확히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부 낙관적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2002년 6월 와세다 대학 강연에서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핵무기 보유는 헌법상 반드시 금지되어 있지 않다. 대륙간 탄도탄도 헌법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본 핵무장론 터부에 도전할 만큼 군사대국화론을 강조하는 대외 강경론자다.
게다가 아베 장관은 일본 헌법 개정을 총리 후보 공약으로 내세운다는 입장이다. 그의 공약대로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을 폐기하는 헌법 개정이 될 경우, 일본은 '보통국가화'라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아예 노골적으로 군사대국주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침략성 폭력의 오만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기승을 부리게 될 게 뻔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의 극우세력이 군사대국화 전략을 위해 일반 국민들의 민족 감정을 선동하고 조장하여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침략의 잘못을 반성하는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관'의 명분을 내걸고, '국제공헌론'의 대국주의를 주장하며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노린다.
이들은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역사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러시아 등 이웃 나라들에 대한 영토 문제 도발로 대외적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일본인들의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켜 민족적 결집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집이 늘어나는 만큼 그들의 정치적 기반도 확고해질 것이기 때문에 일본 극우세력의 민족 감정 선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는 물론 망언이나 역사 및 영토 문제 도발이 오히려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다시 유발한 '민족주의 전쟁'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일본 극우세력의 정략적 민족주의 도발이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의 민족 감정을 자극해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민족주의 전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른 바 '일본의 국제공헌' 실체다.
일본이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해치는 '말썽꾸러기' 횡포를 억제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방법을 찾으려면 일본의 오만이 갈수록 심해지는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체화 단계까지 강화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맹관계가 가장 주목되는 배경이다. 미국이 일본의 오만한 콧대를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목표는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견제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삼아 일본의 불만을 샀으나, 부시 행정부는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해 왔다. 미국은 중국 봉쇄를 위해 일본을 유럽의 영국, 중동의 이스라엘처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매우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2005년 2월 19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새로운 군사협정을 통해 타이완 해협 안보를 공동안보 목표로 설정한 것은 일본의 타이완 해협 문제 개입권을 인정한 것으로서 중국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자세가 더욱 오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의 노골적 오만의 계기가 될 헌법 개정을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4년 8월 13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만약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일본이 희망한다면 먼저 자국의 평화헌법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미국이 일본의 군사전략적 위상과 역할 증대를 바라는 세계전략이다. 일본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해 군사대국화 전략을 추진하며 군사적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군사대국화 모습을 보는 한국과 중국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 없다. 과거 침략의 역사에서 숱한 희생과 고통을 겪은 한민족의 입장에서는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오만함 뒤에는 미국이...
1904년 2월 터진 러·일 전쟁에서 미국이 보인 주도적 역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한 이 해 7월 29일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미국의 요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 밀약에서 극동의 평화를 위해 미·영·일 3국이 실질적인 동맹관계를 확립하도록 함으로써 일본 승리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것을 핵심으로 한 포츠머스 조약도 미국의 주도적 중재로 맺어졌으며 이러한 전쟁 종결의 공로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진주만 공격과 태평양 전쟁의 비극으로 이어진 과거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미·일 군사동맹 관계의 강화에 따른 일본의 새로운 군사대국화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어떤 결과를 빚게 될지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오만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을 비판하고 규탄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도 이번 참배가 일본 국내 문제로서 미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발뺌만 할 일이 아니다. 일본의 오만한 침략성 폭력에는 미국의 묵인과 방조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