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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살인 태민이가 아빠 손을 놓고 뒤뚱뒤뚱 달려가 도착한 곳은 제법 황금빛을 띠고 있는 벼 앞. 벼를 잡더니 만지작만지작 합니다.
3살인 태민이가 아빠 손을 놓고 뒤뚱뒤뚱 달려가 도착한 곳은 제법 황금빛을 띠고 있는 벼 앞. 벼를 잡더니 만지작만지작 합니다. ⓒ 장희용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혹 도시 아이들은 들녘의 벼를 보고 '저게 무엇인지 아니?' 하고 물으면, 잘 모르거나 혹은 '벼 나무'라고 대답한다지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나마 만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한 번도 실제로 보거나 만져본 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을 느낍니다. 다시 한번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방향성이 어떤 가치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지금도 승용차 없이 시골집에 가려면 소위 읍내 고속버스터미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시골집까지 무려 1시간을 더 타고 가야 하고, 그곳에서도 또 다시 20분간 더 걸어가야 도착합니다. '진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촌놈'인 저에게 있어 시골의 풍경이 주는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의 참모습이라 여기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이 녀석이 갑자기 벼를 잡아당깁니다.
이 녀석이 갑자기 벼를 잡아당깁니다. ⓒ 장희용
내 삶에 아름다움이라는 소중함을 채워 준 아버지와 흙

아버지께서는 어릴 적에 항상 말씀하셨지요. 아버지처럼 살면 안 된다고, 아버지처럼 구질구질하게 농사짓지 말고, 농사꾼이라고 멸시받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잘 살라고 하셨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깨끗한 곳에서 일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큰 도시였던 천안으로 이사 갈 수도 있었는데, 그때 이사 갔더라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을 텐데, 다른 자식들처럼 뒷바라지도 더 해주고, 어린 너희 고생도 덜 시켰을 텐데 하시면서 자주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논과 밭에 가서 일을 할 때, 솔직히 그때는 왜 그렇게 일하기 싫었는지 아버지한테 짜증을 부린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커서는 내 아버지가 한평생 땅을 일구며 사신 그 삶 속에 제가 있게 해 준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하지만 흙을 귀하게 섬길 줄 알았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가 자본주의 늪에 깊이 빠지지 않고 부족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제 기억 속에서 많은 것들이 지워진다 해도 풀을 먹이려 들에 매어 놓았던 소를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몰고 오던 그 아름다운 추억, 눈 내리는 겨울에 아버지와 함께 참새를 잡기 위해 덫을 설치해 놓고는 방문 한쪽에 붙어 있던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참새의 동태를 살피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 추억을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논에 있는 벼가 아닌지라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제가 나무라자 금세 얼굴이 시큰둥해집니다.
우리 논에 있는 벼가 아닌지라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제가 나무라자 금세 얼굴이 시큰둥해집니다. ⓒ 장희용
꺼끌꺼끌 벼와 방아 찧는 방아깨비, 시골풍경이 신기한 3살 아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가면 될 수 있으면 시골의 그 풍경을 많이 보여주려 아이들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거닐며 많은 대화를 합니다. 제가 그렇듯이 시골에서 보고 느끼는 그 '충만함'을 조금이나마 아이들이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지난주에도 시골에 갖다 왔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벼는 막 벼꽃을 피우면서 이삭이 파릇파릇 나왔지만, 수확이 이른 벼는 알곡들이 제법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더군요. 고개를 숙인 곡식을 보니 이제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살인 태민이와 6살인 세린이가 어린 시절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 시골길을 따라 뛰어다닙니다. 고추도 따 보고, 콩도 따고, 강아지풀도 뜯고, 개구리 풀도 뜯어 개구리 사냥도 해 봅니다.

조그만 돌 다섯 개를 모아 공기놀이도 해 봅니다. 아빠와 함께 10미터 달리기 시합도 해 봅니다. 뛰어가다 넘어져 울기도 합니다. 훌쩍거리는 아이를 등에 업고는 옥수수를 찌고 있는 내 어머니 곁으로 갑니다. 할머니가 쥐여 주는 옥수수 하나에 금세 눈물을 멈추고는 한입 가득 옥수수를 입에 담습니다.

내가 그랬듯이 내 아이들도 시골에서의 이 하루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입니다. 흙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아버지처럼, 그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내가 그랬듯이 내 아이들도 이 아름다운 기억들이 진정한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방학 때가 되면 어학연수다, 견문을 넓혀준다, 뭐다 해서 자녀를 수백∼수천만 원씩 들여 국외로 보내던데, 비싼 국외 공부가 이보다 값지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흙을 귀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삶'을 아는 사람이라 여깁니다.

만져봐야 아는 것을…. 하나만 따라고 하자 정확히 딱 벼 한 알을 따더니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는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네요. 녀석!
만져봐야 아는 것을…. 하나만 따라고 하자 정확히 딱 벼 한 알을 따더니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는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네요. 녀석! ⓒ 장희용
꺼끌꺼끌하고 조그만 한 것이 신기한지 요리조리 자꾸 쳐다봅니다.
꺼끌꺼끌하고 조그만 한 것이 신기한지 요리조리 자꾸 쳐다봅니다. ⓒ 장희용
볍씨를 깐 다음에 하얀 쌀을 먹는 거라며 겉을 까보라고 하자, 조그만 손으로 열심히 까려고 합니다. 제가 까서 먹여주니 꽤 여물어 단단한 것이 오도독 소리가 납니다. 맛있다고 하기에 몇 알 더 먹였습니다.
볍씨를 깐 다음에 하얀 쌀을 먹는 거라며 겉을 까보라고 하자, 조그만 손으로 열심히 까려고 합니다. 제가 까서 먹여주니 꽤 여물어 단단한 것이 오도독 소리가 납니다. 맛있다고 하기에 몇 알 더 먹였습니다. ⓒ 장희용
방아깨비를 잡아주고는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바께비, 바께비'하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더군요.
방아깨비를 잡아주고는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바께비, 바께비'하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더군요. ⓒ 장희용
방아깨비 다리를 손에 쥐어 주자 방아깨비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방아를 찧더군요. 녀석이 재미있나 봅니다.
방아깨비 다리를 손에 쥐어 주자 방아깨비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방아를 찧더군요. 녀석이 재미있나 봅니다. ⓒ 장희용
콩을 따 주었더니 방아깨비 보고 자꾸 먹으라고 하네요.
콩을 따 주었더니 방아깨비 보고 자꾸 먹으라고 하네요. ⓒ 장희용
그런데 '놀아줘 대마왕'인 우리 딸은? 채송화를 아직까지 보고 있네요. 저녁이 되면 채송화가 잠자기 위해 꽃이 오그라들었다가 아침에 다시 핀다고 말해 주었더니, 잠들 때까지 지켜본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중입니다. 결국 녀석의 채근에 못 이겨 잠자는 채송화 보기 위해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늦게 왔답니다. 덕분에 부모님하고 정겹게 저녁 먹고 왔습니다.
그런데 '놀아줘 대마왕'인 우리 딸은? 채송화를 아직까지 보고 있네요. 저녁이 되면 채송화가 잠자기 위해 꽃이 오그라들었다가 아침에 다시 핀다고 말해 주었더니, 잠들 때까지 지켜본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중입니다. 결국 녀석의 채근에 못 이겨 잠자는 채송화 보기 위해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늦게 왔답니다. 덕분에 부모님하고 정겹게 저녁 먹고 왔습니다.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아이들에게 바른 삶에 대해 깨우쳐 주고 싶다면 시골의 풍경, 시골의 흙과 바람과 구름을 보게 해 주심이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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