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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글어가는 밤송이를 보세요. 제법 굵어졌습니다. 아마 밤송이 가시 속에는 토실토실한 알밤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가고 있을 것입니다. 밤송이 가시가 굳세어지면 모기의 입이 꼬부라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는 가 봅니다. 요즈음 모기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담장너머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 호박넝쿨에도 마지막 찬란한 희망이 매달고 있습니다. 더디게 크겠지만 아이들 머리통 만하게 클 때가 되면 찬 서리가 아무도 모르게 내리게 될 것입니다. 노란 호박꽃이 서러워 보일 때면 논두렁 옆에 있는 작은 도랑에서는 미꾸라지들이 가을 햇빛과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어탕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바로 가을에 먹기 때문에. 사실은 추어탕은 가을 추가 아닙니다. 추어(鯫魚)의 '추'는 뱅어 '추'입니다. 그렇지만 추어탕을 가을에 찬바람이 불 때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갔다 오면 다슬기 잡고 미꾸라지 잡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그래야 다슬기 탕도 먹고 추어탕도 먹을 수 있었거든요. 어머님이 끓여주시던 다슬기탕과 추어탕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을은 마당 한쪽에 말리는 빨간 고추와 함께 깊어갑니다. 태양에 온 몸을 맡기고 퍼질러 누워있는 고추들이 자기를 최대한 줄이고 줄일 때 가을걷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옥수수가 긴 잎사귀로 밭고랑을 덮기 시작하면 역시 찬바람이 붑니다. 붉은 옥수수수염이 조금씩 말라갈 때면 가을은 서서히 기승을 부립니다. 그래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가을을 옥수수 수염이 바람에 날리는 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옥수수 수염이 바람에 날리면 다람쥐도 바빠지고 온갖 벌레들도 서둘러야 하는 계절입니다.
깨금을 아세요? 깨금나무를 아세요? 깨금나무를 개암나무라고도 합니다.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늦 여름과 초 가을에 깨소금처럼 고소롬한 열매를 손톱만 하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코 흘리는 아이들을 유혹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땔감하면서 허기를 채웠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마음이 아팠던 시절입니다.
덥다 덥다를 입에 달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한 바람이 우리들의 옆구리를 파고듭니다. 환절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건강을 준비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