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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관해 오랜 취재보도 경험을 가진 이병선 기자의 [재팬 워치]를 오늘부터 연재합니다. 이병선 기자는 1988년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과 <문화일보> 도쿄특파원 등을 지낸 '일본통'입니다. 지난 2월 <오마이뉴스> 입사 이후에는 주로 <오마이뉴스 재팬> 창간 준비작업에 주력해왔습니다. 이병선 기자는 앞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취재보도와 함께 [재팬 워치]를 통해 한일관계와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시각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전할 것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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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일본의 우경화를 재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달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상황은 '순풍에 돛을 단' 꼴이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전후 '평화국가'의 제약을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급속히 '보통국가'로 탈바꿈해왔다. 급기야 그 적대적 공생관계가 만성화되는 인상이다.
순풍에 돛단 듯 평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일본 방위청은 2007년도 예산액을 금년도보다 1.5% 늘린 4조8636억엔 요구할 방침이라고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정부의 세출삭감 방침에 따라 각 부처가 감축된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는 가운데 오직 방위청만 대폭적인 증액을 추진하고 있는 것. 명분은 물론 북한의 미사일 위협 대처이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22일 자민당 행사에서 밝힌 국가안보회의(NSC) 구상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 장관은 이날 "미국과 정부 차원의 대화를 전략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총리 직속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의 NSC와 같은 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가 구상하는 NSC는 현행 안전보장회의를 확대하고, 특히 한국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통합막료장을 정식 멤버로 참가시키는 것이다.
현역 군인을 대표하는 통합막료장이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들어가는 의미는 간단치 않다. 군부가 주도한 태평양전쟁의 뼈아픈 반성으로부터 전후 철저히 지켜온 '문민통제'의 원칙이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 보수세력은 주도면밀한 계산 아래 북한의 위협을 방위력 증강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들이 깔아놓은 포석대로 '고맙게' 따라와주고 있다.
섬뜩하게 치밀한 일본의 대응
'차기 총리' 아베의 안보 구상은 월간지 <분게슌쥬(文藝春秋)> 9월호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지난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전후로 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다음달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자기 과시'가 필요한 만큼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여있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정부의 대응은 섬뜩하리만큼 치밀하다.
#1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의 대응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약 2개월 전인 5월 말입니다. 먼저 외무성 출신 관방부장관보에게 상황이 벌어지면 총리관저에 어떤 각료들이 모여야 하는지, 국민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지, 어느 단계에서 안전보장회의를 열 것인지, 또 제재를 포함한 대응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검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2
6월5일 미국대사관에서 시퍼 대사와 조찬을 함께 하면서 향후 대응에 대해서 협의했습니다. 미사일이 발사되면 시퍼 대사가 가능한 빨리 총리관저로 찾아와 의견을 교환한다. 미·일간 연대에 조금의 틈도 없다는 사실을 내외에 과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언론에도 공개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그 때 일본으로서는 제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유엔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협의할 때도 미·일간 연대를 취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 시퍼 대사의 이해를 얻었습니다.
#3
확실히 전날에는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복수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발족시킨 프로젝트팀을 소집, 제재발동의 수순을 재확인했습니다. 어떤 제재를 발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6월중에 9개 항의 제재안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4
미사일 발사 첫 보고를 받은 것은 7월 5일 오전 3시52분 취침 중이었습니다. 비서관으로부터의 전화에 깼습니다. 곧바로 총리관저로 향해 4시 30분 도착, 지하 위기관리실로 갔습니다. 5시 되기 전 아소 외상과 누카가 방위청장관이 위기관리실에 모였습니다. 미사일이 발사됐을 때 이렇게 3각료가 모일 수 있도록 주말에도 원칙적으로 도쿄를 떠나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발사정보를 입수하고 1시간 이내에 3각료가 모이고, 다시 1시간 후에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를 위해 회견 30분 전에는 보도진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5
시퍼 대사가 총리관저를 찾아온 것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약 30분 후인 6시 15분. 아소 외상, 누카가 방위청장관과 함께 만났습니다. 미·일간 강고한 연대를 과시함과 동시에 향후 긴밀히 정보교환을 하는 등 연대를 심화시켜 나갈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울러 일본은 제재조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전달했고, 유엔안보리에서도 미·일이 공동 대응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6
7시 24분 안전보장회의가 열렸습니다. 의장인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 8인의 각료가 본래 멤버이지만, 이날은 확대회의로서 통합막료장을 비롯한 자위대 간부들과 관계 부처 간부들도 참석했습니다. 회의에서는 그 시점에서 확인된 정보를 전원에게 전달하고 향후 방침을 협의했습니다. 여기서 결정된 것이 미리 준비한 9개 항의 제재안입니다.
다 알면서 위기 조장한 일본... '핵실험설'은?
우선 일본정부가 2개월 전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그려나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달 전에 이미 '경제제재'와 '유엔안보리 회부'라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미국을 이용하는 방법도 감탄을 자아낸다. 시퍼 주일미국대사와 언제 어떻게 만나며, 이를 언론에 공개할 것인지 여부까지 세밀하게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었다.
결과는 분 단위의 시나리오가 거의 차질 없이 이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첫 보고 접수부터 위기관리실 집결→기자회견→시퍼 대사와 회동→안전보장회의→9개 항의 제재안 발표까지, 아베 장관 스스로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도에 대한 아베 장관의 분석이 한국측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틀림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을 일본 본토에 떨어뜨리는 것 같은 자살행위는 할 리가 없다, 그런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다"는 인식을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고도의 정치적 카드이며, 직접 일본으로 날아올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선제공격론'까지 제기하며 마치 북한의 미사일이 코앞의 위협으로 존재하는 듯이 분위기를 몰아갔다.
의도된 위기 조장이며, 그 귀결은 군사력 증강이고 우경화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한 일본 보수세력의 이같은 강경 드라이브를 제어할 길은 막막하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악화된 한일관계 때문에 이런 과정에 한국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 적어도 이같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 발사설'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이렇다면 지금 부상하고 있는 '핵실험설'에 따른 시나리오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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