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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인간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서로 다칠지 모른다.
키의 염려에 솟은 키의 손을 옆으로 치우며 다시 동굴입구로 다가섰다.
-그런가?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솟은 아까의 일을 상기시키며 동굴로 다가서기 전에 아래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키는 황급히 솟을 만류하고 동굴 틈에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이대고서는 말을 걸었다.
-우리는 너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다.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키는 품속에서 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덩이식물줄기를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굴러 넣었다.
-당장 꺼지지 못해!
동굴 안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솟의 듣기에는 의미가 조금은 알쏭달쏭한 소리였다. 그러나 역시 키는 그 말소리를 알아듣고 있었다.
-우린 너희들이 필요해서 찾아왔어.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나? 아니 사실 너희 종족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너희들이 아끼는 모든 것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
동굴 안에서는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아마 키의 알 수 없는 말소리가 그 의미는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것이 혼란을 주었기에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놈이 찾아왔군. 그런데 그 의미는 모든 것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건가?
-그래, 네가 아끼는 나무조차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당장 네가 예전에 있던 마을로 가보면 알거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보면 알 것 아닌가.
무엇인가를 끄는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동굴 안에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자는 특이하게도 몸에 나무껍질을 벗겨서 만든 옷을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V'자 형태로 꺾인 커다란 나무토막을 들고 있었는데 솟의 눈에는 보통 몽둥이에 비해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눈에 힘이 있다.’
이런 황량한 곳에서 지내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그 자는 활기에 넘쳐 있었다. 그 자는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힘차게 숨을 불었다.
-삐-익!
순간 옆에서 역시 나무껍질로 된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로는 위에 있지?
남자의 말에 여자는 ‘어어’ 소리와 함께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그 행동이 무엇을 부정하는 뜻인지는 솟에게 확실하지 않아 보였다. 키가 그 의미를 말해 주었다.
-누가 또 온다는군.
위에서 툭하고 나무덩이 줄기가 내려오더니 그것을 타고서 역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려왔다. 그는 내려오자마자 솟과 키의 코앞까지 번갈아 다가가서는 실눈을 뜨고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서는 웅얼거렸다.
-이 무슨 재수 없는 짐승이야.
키는 태연히 그자의 태도에 대해 솟에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네드족이라고 꺼려하는 모양인데 솟 자네와 같이 있으니 그나마 덜한 모양이다. 이제 여기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 나온 모양이군.
겨우 세 명의 사람을 만나느라 그 먼 거리를 걸어왔는가 싶었던 솟은 키에게 벌컥 짜증을 내었다.
-아니 나와는 제대로 말도 통하지 않는 자들 셋과 뭘 하겠다는 건가? 그 짐승들을 사냥이라도 하려면 뭐가 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저들과 대화하는 방법이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만 금방 될 리는 없지. 우선 저들의 이름을 내가 가르쳐 주지. 처음에 동굴에서 나온 자는 그차, 여자는 사영, 제일 나중에 온 이는 모로라고 한다. 내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저들은 사영으로 인해 지금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
그들 셋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쑥덕거리더니 사영이 유달리 흰자위가 많은 눈으로 솟을 쏘아보았다. 솟은 그 눈과 마주치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영은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꺼내들더니 흙이 있는 곳으로 가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서는 솟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아끌고 그림을 보여주었다. 흙바닥에는 마치 새와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솟이 그것을 빤히 쳐다보자 사영은 솟에게 불쑥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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