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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수구세력이 전시작전통수권(이하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행동을 '나라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자당(민주자유당)이 미국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민자당의 노력 덕분인지, 1994년 12월 1일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군사적 자주권'을 향한 '열망'을 가진 것은 비단 민자당뿐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의 공화당(민주공화당) 시절부터였다.
박정희 정권도 전작권 환수 요구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요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고(1·21 사태), 이틀 뒤인 1월 23일에 북한이 미국 정찰선 푸에블로호를 동해에서 나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에 대해 강경조치를 취하지 못하자,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미온적 대처 등을 명분으로 전작권 환수를 요구한 적이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이후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가 열릴 때마다 전작권 문제를 거론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환수 요구에는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 담긴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그만큼 한국 정부에게 전작권 환수가 절실한 과제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친미정권이건 반미정권이건 간에 자기 권력이 군 지휘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전작권 환수를 위해 사반세기 이상 '투쟁'했던 '자주 투사'들이 이제 와서 나라를 위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한다니, 그들의 태도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지난 1997년에 정권을 잃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지금처럼 행동했을지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이러한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의 말 뒤집기를 연상케 하는 유사한 사건이 조선 건국 초기에도 있었다. 사병혁파라는 군 개혁을 둘러싸고 손바닥 뒤집듯이 정치적 입장을 뒤바꿔 버린 태종 이방원(1367~1422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처음에는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1337~1398년)의 사병혁파 추진에 반기를 들다가, 정도전을 제거하고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그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사병혁파를 단행하였다.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본래부터 요동(만주) 수복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정도전은 명나라가 외교문서상의 표현 문제(표전문제)를 들어 시비를 걸면서 압박을 가해 오자,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년)의 지원 속에 남은(1354~1398년) 등과 함께 요동수복을 추진한다.
강대국인 명나라와 싸워 요동을 되찾아오자면 군사적 역량을 총결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면 왕족과 공신들이 갖고 있는 사병을 혁파하고 그 병력을 국가 장악 하에 둘 필요가 있었다.
이때 정도전은 일련의 군 개혁 과정에서 1397년에 무과를 실시하고, 또 사병혁파를 위한 포석으로 진법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진법훈련은 사병들까지 소집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사병을 갖고 있는 이방원 등에게는 결정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수구세력'의 전작권 환수 반대, 이방원과 닮은꼴
이같은 정도전의 군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제5왕자 이방원은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요동 수복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사병혁파 자체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병을 잃는 것은 집권파인 정도전 및 이방석(세자, 제8왕자)에 대항할 수 있는 무력 기반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방원 등이 진법훈련 소집에 반대하자,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움직여 이방원을 포함한 왕족·공신들에게 태형(笞刑) 50대를 명하게 한다. 물론 이방원 대신 그의 부하 장수가 대신 벌을 받긴 했지만 이것은 이방원이 직접 볼기를 맞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사병혁파에 극렬 저항하고 또 이를 명분으로 정도전 등 집권파를 살육하는 제1차 왕자의 난(1398년)을 벌인 이방원. 그러나 그는 자신이 조선 제3대 군주가 된 1400년 이후에는 그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병혁파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는 정도전의 못다한 개혁인 사병혁파를 결국 이루어 낸다. 정도전의 사병혁파를 반대하여 정도전을 살해함은 물론 아버지인 이성계까지 권좌에서 몰아낸 인물이, 나중에는 정도전이 계획했던 사병혁파를 '확실히' 완수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정도전과 이방원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은 꼭 개혁 그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개혁 추진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잃거나 혹은 권력으로부터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사적 동기에서 개혁을 반대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개혁 추진세력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방원의 사례가 여기에 잘 부합하는 케이스가 될 것이다.
오늘날 한나라당의 전작권 환수 반대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자신들의 '선조'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열렬히 추진하던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고 있으니, 전작권 환수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전작권 환수 추진세력이 자신들과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면 그 추진과정에서 혹 자신들이 더욱 더 권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어느 정권이든 간에 자신들이 군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주정권이든 사대정권이든 그 점은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도 정권 획득을 지향하는 세력인데 그들이라고 해서 전작권 확보를 싫어할 리는 없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전작권 환수가 아니라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는 사람들' 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이 훗날 정권을 장악할 경우 전작권 환수가 훨씬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만약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한다면, 한나라당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전작권 환수를 더욱 더 열심히 추진할 것이고, 지금의 전작권 추진세력은 그때 야당이 되더라도 전작권 환수를 여전히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가 되면 여야가 혼연일체가 되어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994년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한나라당에게 '나머지 절반'의 성공도 맡겨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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