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시간, 재능 모두 나눔의 대상입니다. 1% 나눔, 100개 중에서 1개를 내놓으면, 내 주머니 속 1개 빈자리에 신기하게도 '즐거움'이란 놈이 어느새 싹을 틔웁니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가 진주 사람들에게 건넨 나눔의 메시지이다. 아니 그는 자신을 ‘나눔과 봉사’라는 약을 파는 약장수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진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12회 서경방송 시민강좌에는 현재 전 국민을 ‘나눔과 봉사’라는 약으로 중독(?) 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 박원순 상임이사가 강연을 했다. 박 상임이사는 강연 대에 서서 약 1시간 30분 동안 감동적으로 약을 팔았고, 이날 강좌에 참석한 150여 명은 끝내 집단 중독현상(?)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와 청중의 ‘마음 나눔’의 자리였다.
얼마 전 박 상임이사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오랜 세월 사회 정의와 기업 활동의 공정성, 정부 부패 청산 등을 위해 활동해온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인으로는 장준하(1962), 김활란(1963), 김용기(1966), 이태영(1975), 장기려(1979), 제정구·정일우(1986), 김임순(1989), 오웅진 신부(1996), 법륜 스님(2002), 윤혜란(2005) 시민운동가 등이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바 있다.
그럼, 이날 박 상임이사가 진주 장터에서 판 ‘나눔과 봉사’라는 약의 성분을 꼼꼼히 따져보자.
누이에게는 빚진 사람... ‘돈 잘 벌던 시절’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창녕 촌놈이었고, 우리 부모는 가진 것 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농사꾼이었다. 누나 넷에 형 한 명, 누이 한 명, 7남매의 여섯째였다. 나는 면서기라도 시키려던 부모의 교육열로 촌에서 일찍이 상경해 경기고와 서울대에 다녔다. 하지만 나의 누이는 초등학교를 겨우 나왔을 뿐이다. 나는 그런 누이에게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어서도 살림살이에 보태준 적 없다.
부모의 기대로 들어간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한 1975년은 긴급조치 시절이었다.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이 하는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활동하다가 영등포구치소로 잡혀갔다. 그때 나는 19살이었다.
첫날밤 나는 강도 살인범과 함께 잤다. 무서웠다. 하지만 며칠 지내다 보니 그들과 친해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게 됐다. 교도소는 완벽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습장이라, 그때 읽은 책은 평생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 나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에다 교도소에 간 것도 나는 행복했다.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 잡아넣는 것’은 나의 체질이 아니었다. 나의 눈에는 모든 피해자들이 고만고만한 사연 속에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나중에 부장검사는 나에게 “관선 변론하러 왔나”라고 말했다.
1982년 검사생활을 접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한마디로 ‘장사 잘됐다’. 몇 년 사이에 집, 차, 부동산 재테크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집을 팔고 차를 팔아 내 이웃을 위해 ‘왕창’ 쓰기 시작했다. 탐욕이란 궤도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나눔을 실천하게 되자 오히려 내가 행복이란 걸 얻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독 '나눔'
“재단법인비 3억을 빌려 아름다운 재단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서구 사회보다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정이 많고 나눔의 심성이 있다. 잔치나 제사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는 것을 봐라. 단지 나눔이 좀 더 사회화, 체계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또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인만 되면 아낌없이 기부한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재단은 모든 수입과 지출 장부를 인터넷으로 공개한다. 지난해 117억 모금해 알뜰하게 썼다.
한 기업은 50억 원을 기부하며 이혼, 사별, 미혼모를 위해 써달라고 해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창업자금으로 대출해 주고 있다. 그 기업은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팔아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 수익을 여성들과 나누려고 한 것이다.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는 국가생활보조금, 단체나 방문자들이 주는 돈을 모아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하며 고아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셨다. 울산에 있는 한 할머니는 바닷가를 돌며 행상을 해 매일 2천 원씩 모은 돈을 기부하셨다. 함부로 쓸 수 없는 눈물겨운 돈들이었다. 서울 성동 지하철역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이는 술에 취하면 가족을 때렸는데, 기부봉사를 하며 사람이 달라졌다. 지금은 구둣가게 앞에 ‘나눔의 가게’라 써놓았다.
남을 돕는 것은 큰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나눔은 내 것을 줌으로써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한 번 기부한 사람은 나눔의 행복을 알기 때문에 다시 기부하게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재단 내에는 ‘전에 기부한 사람을 다시 찾아가라’는 말이 유행한다. 한번 기부한 사람들은 다시 기부할 기회를 주는 것을 감사히 여겼다. 이렇게 조금씩 나눔은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중독(?) 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독이다.”
젊어서 유언해라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은 ‘성실’이다. 농사꾼인 나의 부모는 언제나 나보다 늦게 자고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 언제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 또한 일과 결혼했고, 일이 취미인 사람이 됐다. 내 부모님의 유산인 ‘성실’은 몇십억 재산보다 가치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유언장을 써놓았다. 나의 유언장에는 ‘아들아,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을, 물려받아라’고 적혀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재산이 아니다. 자식에게는 경제적으로 든든한 울타리보다 아무것도 없는 조건이 삶의 자산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콩 한쪽을 귀히 여기는 생각은 콩 한쪽이 절실한 사람의 심정을 알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나누어줄 줄도 안다. 나눔의 실천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진 사람이 좋은 생각, 바른 생각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나누며 함께 사는 법을 지켜라.
인도 캘커타에 가면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눔과 봉사의 어머니인 마더 테레사의 사진 속 얼굴만 봐도 이웃을 돕게 된다고 한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욕심을 부린다. 99개를 가진 부자가 1개 가진 가난한 이의 것을 뺏는다. 그래서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흔히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나누지’라고 하는데, 나눔에는 많고 적음이 없다. 부자가 돼서 나누는 것은 어렵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서 1%씩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재단은 풍요한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함께 나눔으로써 모두가 조금씩 풍요해질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아름답습니다. 버는 것은 돈이지만, 나누는 것은 마음입니다. 버는 데만 열중하는 사회에서 아름답게 돈 쓰는 사회로, 정의로운 풍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바른지역언론연대 소속 '진주신문'(www.jinjunews.com) 821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