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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3일 경기도 광주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자이툰 부대 창설식.
2004년 2월 23일 경기도 광주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자이툰 부대 창설식.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향신문>이 화두를 던졌다. 아주 상징적이다.

국방부가 최근에 자이툰 부대 5진 3차 병력 200여명 모집 공고를 냈다. 이들의 출국 예정일은 12월이다. 이게 문제다. 국회가 동의한 자이툰 부대 파병 시한은 올해 12월 말까지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자이툰 부대 파병 시한을 늘릴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는 얘기다.

'자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논법에 따르면 자이툰 부대 철군 여부는 '자주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이 눈치 저 눈치 볼 이유가 없다.

너무 거친 얘기인가? 아마추어식 원칙론인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명분도, 조건도 갖춰져 있다.

철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는데...

찰떡을 넘어 본드 수준의 접착력을 보이는 미일동맹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위대 철군을 결정했다. 자이툰 부대 파병 목적과 똑같았던 '재건 지원'이 완료됐기 때문이라는 게 일본 정부가 내놓은 철군 이유다

그 뿐이 아니다. 다국적군이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다음 달부터 이라크 정부로 이양된다. 미군과 영국군은 철군을 준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두루 살펴 슬쩍 묻어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자이툰 부대 철군을 '자주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국방부 관계자는 "철군을 발표한 나라와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했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이 부연설명한 '매우 다른 상황'은 이것이다. "국민들이 한미동맹이 앞으로 문제없이 계속 지속돼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자이툰 부대의) 감축 문제 등을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할 형편이다."

유사 사례가 있다. 정부는 7월 14일, 미국이 오염 치유가 됐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미군기지 15곳의 반환에 합의해 5000억원의 치유 비용을 떠안게 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한미동맹 등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양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시 문제는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을 위해 자이툰 부대를 철군할 수 없고, 한미동맹을 위해 기름범벅이 된 우리 땅도 두말 않고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독 전시 작전통제권은 '자주적으로' 환수하려 든다.

가뜩이나 헷갈리는데 더욱 어지럽게 하는 요소가 눈에 띈다. 김성한 미주연구부장이 부연 설명한 건 '한미동맹'이 아니라 '한미동맹에 대한 국민 확신'이다. 한미 관계가 아니라 국내 여론지형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 지점에 오면 헷갈림은 거의 분열증 수준으로 증폭된다. 전직 국방장관과 전직 대장들, 그리고 주요 야당이 '궐기'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데도 정부는 '자주'를 내세워 밀어붙이고 있다. 환경단체와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름투성이 미군 기지를 군말 없이 넘겨받았다. 그런데 자이툰 부대 철군은 '국민 확신'을 문제 삼는다.

'자주'인가 '자조'인가

마술쇼를 보는 듯하다.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손동작처럼 상황이 어지럽고 현란하다. 하지만 잘 보면 안다. 대수로운 게 아니다.

'자주'만 빼면 된다. 자주라는 개념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미국의 이익'이란 개념을 세우면 이율배반적 상황은 거꾸로 수미일관성을 확보한다.

자이툰 부대 파병과 오염 미군기지 반환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또는 이양)도 다를 바 없다. 미군 재배치 전략에 부응하고 미국 군수산업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렇게 보면 '자주'라는 개념은 '자조'라는 개념으로 바꿔 쓰는 게 맞다. 여기서의 '자조'는 '스스로 돕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진해서 돕는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따지면 된다. '자주'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조'의 그늘을 가리기 위해 '자주' 논리를 유포하는 것인지를 짚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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