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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꽃은 아마도 코스모스일 것입니다. 코스모스만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도 드뭅니다. 그래서 친숙하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대하는 꽃입니다. 코스모스 꽃 그 자체는 이름만큼이나 잘 다듬어진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언급된 것을 보면 코스모스는 신이 연습 삼아 만들어본 꽃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꽃으로서 꽃대와 잎사귀, 꽃 봉우리(두상화·頭狀花)가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바람에 쉽게 부러질 것처럼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소녀의 순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나 봅니다.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입니다.
그렇지만 길가나 강둑에 줄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을 보면 화려하고 멀리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바람에 몸을 부린 코스모스 꽃들은 교향곡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음악적 리듬을 선천적으로 간직한 것처럼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석양녘에는 더욱 환상적입니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걸어 보면 코끝에 묻어오는 향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가을에 제격입니다. 파란하늘이 깨어질 정도로 맑을 때에는 오색의 코스모스가 더욱 돋보입니다. 코스모스길은 많이 있지만 코스모스가 제대로 피어 있는 도로는 김제에서 벽골제를 지나 신태인 정읍으로 빠지는 29번 국도입니다.
아내의 출퇴근을 핑계 삼아 정읍을 가다 보면 코스모스가 참 걸판지게 피어 있습니다. 특히, 김제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때를 맞춰 가면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코스모스는 어렸을 때 길가에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꽃잎을 따서 손가락 사이에 끼워 친구의 등짝을 세차게 때리면 하얀 옷에 선명하게 무늬가 찍히곤 했습니다. 아니면 친구들과 꽃을 손가락으로 튕겨 꽃을 떨어뜨리는 게임을 해서 지면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 때가 그립습니다.
코스모스 길을 '세월아 네월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까지 거닐며 놀았던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아니 그리운 옛사랑이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꽃에 지금도 걸려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추억을 불러내는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적 뜸한 노을 진 길가
외로운 코스모스 꽃 한 송이
이름만이 홀로 남은 삶이
가던 길 멈추게 하고
마음은 인연 찾아 길 떠나고
내가 걸어온 그 자리에서
나 혼자만 남아 먼 산 보며
가슴 속 추억만 그리워하고
한가한 길가 혼자서 걸을 때면
그림자 하나 내 발걸음 붙잡아 놓고
코스모스의 고고한 여운
질펀하게 가을 하늘 수놓는다
- 한가한 길가에 서서, 자작시
달맞이꽃을 보셨나요? 달맞이꽃은 강둑이나 길가에 잘 자라는 꽃입니다. 강둑의 돌밭이나 강변의 돌무더기 속에서도 노란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생명력이 무척 강한 식물인가 봅니다. 이슬이 차갑다고 느낄 때면 해질 무렵부터 저녁을 노랗게 물들이는 꽃들이 별처럼 여기저기 피어난 강둑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늦 여름밤에 피어난 달맞이꽃은 사실 사랑하는 달의 신 아르테미스(디아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먼 옛날 달을 사랑하는 숲 속의 님프가 있었답니다. 그렇지만 사랑에는 꼭 방해꾼이 있잖아요. 이 님프를 시기한 다른 님프들이 제우스신에 일러바쳤다는군요. 그래서 제우스는 이 님프를 달도 별도 없는 먼 곳으로 내쫓아 버렸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달의 신 아르테미스가 이 님프를 찾기 위해 밤마다 애를 썼답니다.
이마저 시기한 제우스가 구름과 비로 하늘을 가려 달의 신이 님프를 찾는 것을 방해했답니다. 사랑하는 달을 볼 수 없는 님프는 결국 상사병에 걸려 죽어버렸답니다. 달의 신이 이 님프를 찾았을 때는 이미 죽어서 그 무덤 위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이 바로 달맞이꽃입니다.
기다림에 지친 님프의 마음을 생각해 보세요. 여리고 가냘픈 모습이 저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달맞이꽃의 꽃잎은 연하기 그지없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금방 녹아버릴 것처럼 약합니다. 개나리처럼 진노랑도 아니고 연한 노랑은 순수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아마 연약한 느낌이 더 강할 것입니다. 기다림에 지쳐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걱정이 걱정을 물고 나와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 걱정하잖아요.
달맞이꽃은 어떻겠어요. 달도 뜨지 않는 밤에 달의 신을 기다리는 밤을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의 몸이 사그라져서 만들어낸 꽃이 바로 달맞이꽃일 것입니다. 빛을 원했지만 끝내 빛을 가슴으로 안아보지 못한 요정의 마음이 애처롭지 않으세요.
어렸을 때 보았던 달맞이꽃이 정말 그랬어요. 지금은 제방을 콘크리트나 돌로 쌓아올려 달맞이꽃이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강둑을 노랗게 덮고 있었습니다. 달이 절반을 채우지 못한 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달맞이꽃을 상상해보세요. 천 년 만 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 것입니다.
첫여름 하얀
달밤이 되면
그만 고백해 버리고 싶다
그대 내 사람이라고
키 큰 포플러 바람에 흔들리고
수런수런 풀 냄새 온몸에 젖어들면
입으로 부르면
큰일 나는 그 사람
하르륵! 향기로 터뜨리고 싶다.
그만 뜨거운 달맞이꽃으로
확확 피어나고 싶다.
- 달맞이꽃, 문정희
우리가 간직한 기다림이나 사랑은 이렇게 달빛아래서 아무도 모르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지도 모릅니다.
닭의장풀을 아세요? 닭의장풀은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방죽 언덕이나 울타리 밑이나 텃밭의 자투리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우리나라 식물의 꽃치고는 섬세하게 생겼고 귀족적인 취향을 띠지만 연한 보라색 아니 연한 파란색에 가까운 꽃은 서민적인 은은함을 풍깁니다. 특히 비가 내리거나 이슬이 내린 아침에 풀숲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닭의장풀은 약간 슬픔을 간직한 것처럼 보입니다.
닭의장풀은 달개비라고도 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바쁜 손일을 더 바쁘게 만들었던 잡초(?)였습니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뽑아서 담장 너머 훌훌 던지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풀은 번식력이 매우 좋은 식물입니다. 줄기마다 잎사귀가 나오는데 잎사귀가 있는 줄기마디에서 바로 뿌리가 돋아납니다. 그래서 흙에 닿기만 하면 뿌리를 내립니다. 그래서 여기저기로 번져나갑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얼마나 귀찮아했겠어요. 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또 다른 잡초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닭의장풀은 닭장 근처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닭의장풀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싱거운 유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을 보면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마 제가 모르는 꽃과 관련된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닭의장풀꽃은 아침에 일찍 피었다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꽃잎을 접어버리는 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만이 볼 수 있었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닭의장풀은 '순간의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습니다.
닭의장풀꽃은 연한 파란색 꽃잎 두 장을 하얀 꽃잎이 밑에서 바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 수술이 길게 앞으로 두세 개가 나와 있어 정면에서 보면 파란 나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파란색의 벼슬을 가진 닭의 머리처럼 보입니다. 이름을 짓는 사람들은 정말 상상력과 추상력이 매우 좋은 사람들인가 봅니다.
저희 집 거실 에어컨 위에는 서양 달개비가 엄청 풍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줄기에서 줄기가 나오고 또 다시 줄기에서 줄기가 나와 풀어헤친 머리처럼 한 아름이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닭의장풀과는 달리 꽃이 피지를 않습니다. 실내에서 키워서 그런지 꽃을 볼 수가 없어서 정말 아쉬움이 많습니다. 물론 에어컨을 덮은 풍성한 잎사귀가 보기는 좋지만 말입니다.
역시 꽃도 우리 것이 최고인가 봅니다. 가을 들판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우리 꽃들이 많습니다. 이런 꽃들을 볼 때마다 꽃과 관련된 이야기나 꽃말, 추억 등을 생각하면서 걷다 보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삶을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 가을이 가기 전에 떠납시다. 가을 들녘으로.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