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북한이 한국에게 임박한 군사적 위협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지난 8월 27일 도날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던진 이 발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과 결부시키면 더욱 그렇다.
럼스펠드가 누구인가? 미사일방어체제(MD) 선봉장에 있었던 그는 2001년 1월 초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을 중단시키는 등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대북강경책을 주도해온 쌍두마차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북한이 한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럼스펠드의 발언에 대한 반응도 흥미롭다.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보수진영은 그의 발언을 노무현 정부의 있지도 않은 '반미' 노선과 연결시키려고 하고, 전작권 환수를 지지하는 진보진영에서는 '그것 봐라'는 반응이 나오는 듯 하다. 그러나 럼스펠드의 발언은 보다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MD 띄우기'
우선 그의 발언이 나온 시점과 장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전작권 문제에 빠져 있는 나머지, 럼스펠드의 발언은 작통권 이양과 결부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맥락은 MD에 있다. 럼스펠드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해서는 '솔직히' 얘기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한껏 강조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럼스펠드의 발언은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에서 나왔는데, 이 곳은 미국 본토를 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기 위해 지상미사일방어체제(GMD)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또한 8월 31일에는 1년 6개월 만에 GMD 실험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이번 실험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겨냥한 것이라고 '최초로' 대놓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2004년 12월과 2005년 2월에 실시된 GMD 실험은 요격미사일이 발사조차 되지 않아 MD에 대한 회의론을 증폭시킨 바 있다.
이러한 맥락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하고, 미사일 위협은 '한껏' 강조한 럼스펠드의 기본적인 의도는 'MD 띄우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2009년에 작통권을 한국에 이양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시로도 해석된다.
2005년 3월 8일 미 상원 청문회
럼스펠드 발언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뒤늦은 솔직함'이다. "북한이 한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두고, 일부 보수언론들은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 3월 "북한군은 한국에 대한 중대하고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위협"이라고 말한 것을 소개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럼스펠드와 벨의 발언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의 종'은 럼스펠드 쪽에 있다. 이는 주한미군 사령관과 태평양 사령관 등 북한의 군사 정보에 가장 밝은 미군 장성들의 발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2005년과 2006년 이들 사령관의 미 의회 청문회 증언록을 확인해본 결과, 2005년 3월 8일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과 윌리엄 팔롱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은 미국 의원들의 잇따른 질문에 북한 군사력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내놓았다.
라포트는 "북한의 연간 비행 훈련은 12~15시간인 반면에 한국과 주한미군 공군은 월 평균 15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훈련 차이가 갖는 함의에 대해 의견을 말해달라는 존 워너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공화당)의 요구에 대해, 팔롱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은 북한의 비행훈련 상태는 "확실히 군사적 준비태세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북한의 공군력은 전쟁을 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럼스펠드도 알래스카에서 강조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군당국은 한국 공군이 북한 공군보다 겨우 3% 우세하다고 밝혔다.
미군 수뇌부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상원 의원들의 잇따른 질문을 받은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 육군의 훈련 상태도 부적절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북한군의 여단급 훈련조차 거의 보지 못했다"며 "사단 및 군단 훈련은 대규모의 기동 훈련이 아니라 지휘소 훈련(command post exercises)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오랫동안 대규모의 실전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DA는 한국의 육군 전력이 북한의 80%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솔직해지는 이유
이날 청문회에서 미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칼 레빈은 "주한미군 사령관은 내 사무실에서 북한군의 군사적 준비태세가 부족하다는 정보를 나와 공유했다"고 말했다. 워너 위원장은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략무기(탄도미사일과 화생방 무기를 의미함)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냐"고 물었고, 팔롱 사령관은 "그러한 요소가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핵심적인 수뇌부들은 적어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한국군과 비교할 때 크게 뒤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주한미군 주둔 및 국방 예산 확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왜 최근 들어서는 솔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의원들이 캐물으니깐 얘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전략 및 주한미군 운용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MD에 사활을 걸어왔던 부시 행정부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강조해왔다. 이러다 보니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보다는 WMD 위협을 강조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F-15K를 판매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 또 다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을 강조하고 나올 개연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 한가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이다. 대북 억제 및 방어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국군에게 넘기고, 주한미군에게는 '딴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북한군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군이 한국군보다 강하다고 우기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쌩뚱맞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현재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1년간 워싱턴에 머물면서 한반도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심층적인 기사와 칼럼을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