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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의 한 Adult Shop 내부 모습, 미국에서는 쉽게 성인용품샵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시애틀의 한 Adult Shop 내부 모습, 미국에서는 쉽게 성인용품샵을 찾을 수 있다. ⓒ 김귀현

'섹스포'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세미스트립쇼와 누드사인회가 취소된 것이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섹스포도 나에게는 매우 즐거웠다. 물론 난 모든 사고의 틀을 '무장해제'한 상태였다. 단지 본능에 충실했다.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개방된 성의식에 매우 놀란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어덜트숍'이라는 성인용품 가게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본도 우리나라의 팬시 전문점 같은 곳에서 섹스보조기구 등의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인 용품을 구입하려면 인터넷이나 구석진 성인용품 가게에 가서 남의 눈치를 보며 은밀한 거래를 해야 한다. 섹스 박람회에서는 이런 은밀한 물품들이 당당하게 대중들 앞에 전시되고 있었다.

섹스 박람회장에서 나는 유쾌했다

섹스포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 마네킹이 처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해 준다.
섹스포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 마네킹이 처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해 준다. ⓒ 김귀현
경제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경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열이면 열, 1학년 1학기 경제학원론 시간에 배운 경제의 정의를 협의와 광의로 나눠 틀에 박힌 원론적인 설명을 한다. 또 관광학을 전공한 친구에게도 '관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말이 조금씩은 다를 지 몰라도 '거주지를 벗어난다' '보고 느낀다'는 등 사전적인 답변을 한다.

이런 것을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부분 교과서 중심의, 사회가 원하는 사고의 틀 안에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틀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다.

섹스 박람회장에는 자위용 여성 마네킹, SM(Sado Masochism) 정신에 기반을 둔 채찍과 수갑, 여성용 자위기구들이 즐비해 있다. 우리 사회는 상식에서 이런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다른 욕구는 다 인정해도 성욕에 대해서만은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성욕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더욱 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난 섹스포를 관람하는 내내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봤더라면 서로 얼굴 붉히고 낯뜨거울 전시물들이 있더라도, 이 곳에서만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볼 수도 있었고 만져볼 수도 있었다. 섹스포 박람회장 안에서만은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당당히 내보여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박람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보고 나온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거 다 동네 성인용품 가게에 다 있는 것들이야" 하는 불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난 그분들께 되묻고 싶었다.

"그 곳에 당당하게 들어가 보신 적이 있나요? 당당히 물건을 구입하신 적이 있나요?"



남성용 자위 마네킹 인형. 이 곳에서는 수많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남성용 자위 마네킹 인형. 이 곳에서는 수많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 김귀현
성인용품 가게는 주로 동네의 구석진 곳에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주로 카센터 옆이나 공영주차장 옆, 3층 건물의 꼭대기쯤에 작은 평수로 있다.

나도 호기심에 몇 번 가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엄마 몰래 오락실 가듯 조심스레 들어갔고, 들어가서도 당당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그렇다. 음침한 조명에 사람을 주눅이 들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구경조차 제대로 못하는 데 용기있게 구입하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섹스포 현장에서는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자위용 여성 마네킹의 촉감을 느껴보기 위해 만져 보아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당히 가격도 물어볼 수 있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은지도 물을 수 있다. 이곳은 음산한 성인용품 가게가 아닌 '박람회장'이기 때문이다.

성욕과 그에 수반되는 쾌락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쾌락을 누리는 것조차 교과서대로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든 자기에게 잘 맞는 쾌락을 위해 노력할 권리가 있다.

누구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위용 인형과 하룻밤을 보낼 수 있으며, 고통을 느끼며 쾌락을 얻는다면 파트너에게 채찍질을 할 수도 있으며, 여성용 자위기구를 이용해 여성도 마음껏 홀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문화의 다양성이다.

일본 여성들은 하라주쿠에서 예쁜 콘돔을 고른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행사장 안내를 맡고 있다. 이번 섹스포는 남성 중심의 박람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행사장 안내를 맡고 있다. 이번 섹스포는 남성 중심의 박람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 김귀현
주최측에서는 이번 섹스 박람회를 '노인의 성' '장애인의 성' '에이즈 예방'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한 성교육'이 박람회의 취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잘라 말해 위와 관련된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언급했듯이 성인용품 전시뿐이다. 차라리 '성인용품 박람회'라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비난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남성 중심의 박람회라는 점도 아쉽다. 입구에 들어서면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안내를 하고 있다. 행사장에서도 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들이 섹시 댄스를 추고 있다. 지극히 남성 위주의 박람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도쿄의 젊은이의 거리 하라주쿠 중심가에는 콘돔 전문샵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여성이 대부분 고객이다. 여성이 예쁜 콘돔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번 박람회는 남성의 흥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여성의 반감을 사고, 여성의 성에 대한 관심도와 성인 용품 구매력을 무시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다양한 성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난 이 박람회를 꼭 가보길 권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전시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전에 이런 문화도 있구나 하며 사고의 틀을 확장해 보자.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사고의 틀을 깨고 본능에 충실 해보자. 자신의 감춰두었던 성적 욕구의 다양성을 분출시켜 보자. 부끄러움 없이 박람회장을 찾아 어떤 기구들이 나에게 맞는지 가늠해보자. 그렇다면 세미스트립쇼, 누드 사인회가 없는 섹스박람회도 당신을 유쾌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일본 하라주쿠의 한 콘돔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는 호두형 콘돔.
일본 하라주쿠의 한 콘돔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는 호두형 콘돔.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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