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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열 살,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에 시달리다.
열세 살, 가출을 시작하다.
열다섯 살, 첫 성경험을 하다.
열여섯 살, 학업을 중단하다.
열일곱 살, 첫 임신을 하다. 그리고, 임신 3개월 만에 첫 낙태를 감행하다.
그 후로도 가출과 임신, 그리고 낙태를 반복하다….

10대 미혼모의 일반적인 자화상이다. 지난해 말 현장 조사된 바에 따르면 미혼모의 첫 임신 후 재임신율은 평균 30%대로, 10대를 중심으로 90년대 말부터 현저하게 증가하는 추세다(표 참조). 왜 그럴까.

90년대부터 서울 소재 미혼모 시설 '애란원'에서 일해온 한상순 원장은 "폭력, 빈곤 등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가출이 시작돼 공원, 찜질방을 전전하며 거리에서 방황하다 임신하게 되고, 이후로도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임신과 낙태를 거듭하는 악순환 패턴이 반복된다"며 "10대에 첫 임신을 하게 되면, 20대에도 또 30대에도 미혼모 신세를 면키 어렵다"고 단언한다. 또 피임에 대해서도 수동적이 돼 성적 주체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임신 위험까지 감수하며 상대 남성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게 마련이다.

"첫 임신, 그래도 아직까지는 가능성과 희망이 있죠. 그런데, 임신을 두 번째로 경험하면 대개는 굉장히 무력해지죠. 이젠 더 이상 자신의 삶엔 희망은 없다는 생각에 분노를 발산하고 자기 공격성에 우울증이 겹쳐 자살까지 기도하게 되죠. 혹은 성매매 현장으로 유입되든가.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비로소 한 여성이 새 삶을 살 수 있죠."

이런 배경에서 한 원장을 비롯한 현장 전문가들은 청소녀 중심의 중간 개입장치로서 그룹홈을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룹홈'이란 미혼모의 정서적·사회적·경제적 자립능력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임신 재발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한 '모·부자복지법' 개정안에 거는 기대가 각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개정안으로 미혼모 그룹홈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청소녀 미혼모가 입소할 수 있는 중간 거처인 그룹홈은 전국적으로 애란원 부설 세움터 1곳에 불과하다. 2001년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세움터는 5~6명 정원에 만 24세까지 입소할 수 있으며, 최대 체류 기간은 2년에서 2년 3개월 정도다. 사업 초기 월 200만 원씩 지원되던 서울시 지원금은 현재 300만 원 가까이로 다소 늘어났다.

그런데 이처럼 의미 있는 시설이 왜 서울시를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할까.

세움터 사회복지사인 김유선씨는 한마디로 "인풋(in-put)에 비해 아웃풋(out-put)이 높지 않아 그다지 사회적으로 피력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립도가 50%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김씨는 미혼모 임신 재발 예방사업은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사회서비스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현장 전문가들은 국가가 이들 미혼모에 예산을 좀 더 투입하면 "한시적 도움에 힘입어 안정되게 세금을 내고 살아갈 세대가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2003년 미혼모 가정 아동에 대한 연구(Perry Study)에 따르면, 아동 1인당 2년간 1만4716달러를 투입하면, 20년 뒤 10만5324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범죄 예방 등의 사회적 비용 절감과 함께 세금수입, 성인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비용 절감 등의 부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이를 미혼모에 바꿔 대입시켜 보면, 미혼모를 지원하는 것이 왜 개인 구제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익활동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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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지 국가가 돕는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모·부자복지법 개정안 의결

미혼모·부자 가정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될 전망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지난 8월 24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미혼모는 물론 태어난 자녀의 초기 양육까지 지원하는 '미혼모·부자시설'을 설치하는 내용의 모·부자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제출한 모·부자복지법 개정안을 통합한 것으로 ▲출산만을 지원하던 '미혼모시설'을 출산에 이어 자녀를 양육하고자 하는 미혼모들에게 일정 기간(90일 내외) 자녀 양육을 위한 공간과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미혼모·부자시설'로 전환하고 ▲현재 전국 9곳에서 시범운영 중인 양육 미혼모를 위한 자립 지원시설 '양육모 그룹홈'(공동생활가정시설·전 중간의 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의료급여 혜택과 시설수준 보장, 시설 수를 늘리며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미혼모들에게도 경제적인 자립과 사회적응, 재발방지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생활가정시설을 제공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가 미혼모 2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입양을 결정한 미혼모(157명) 가운데 37.7%(61명)가 "재정적인 지원이 있다면 아이를 직접 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답해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매년 70%에 달하고 있는 미혼모 자녀의 해외입양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이혼한 후 혼자 아이를 기르거나 미혼모가 된 외국인(이주) 여성에게도 내국인과 똑같은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포함해 점차 늘고 있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지원 폭도 넓혔다.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인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시설 자체가 많지 않아 실제 수용 인원은 전체 미혼모 숫자에 비하면 미미할 수밖에 없지만, 의지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모들에게 이제 국가가 나서서 양육 공간 등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큰 이변이 없는 한 9월 정기국회 때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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