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필봉풍물굿축제'(이하 '풍물굿축제')는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대규모의 거창한 모양새를 만들어야 축제다운 축제라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풍물굿축제'는 작은 규모로도 많은 이들을 유혹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다. 방문객의 몰입도에서 본다면 어느 축제에도 뒤처지지 않는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산이 없어 축제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일부 기획자나 지자체 담당자들의 목소리는 과장된 엄살로 들린다. 충분한 예산으로 축제를 준비한다면 어느 누군들 못하겠는가! 그들의 열악한 여건을 무심코 동정하기에 앞서, 오히려 축제를 빙자해서 갖가지 판박이 '이벤트'를 양산해내는 기획자들의 농간을 지적해야 할 지경이다. 한번쯤은 이들의 축제 기획 능력을 의심해보고 제대로 검증해야 옳다.
물론 모든 축제가 '풍물굿축제'와 획일적으로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저마다 추구하는 이상향이 다를 수밖에 없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다양하고 풍성한 축제가 만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고유한 문화적 체험'이 없다면, 축제의 매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축제 기획 능력의 검증은 이러한 매력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그럼 우선 '풍물굿축제'가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몇 가지 축제의 가치를 음미해보자. 제11회 '임실필봉풍물굿축제'는 지난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필봉농악전수관에서 임실필봉농악보존회 주최로 열렸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축제
관계자에 따르면, '풍물굿축제'는 전라북도와 문화재청·임실군 등의 지원을 합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예산이 1천만원선에 그친다고 한다. 보통 억 단위로 꾸리는 웬만한 지역 축제와 비교해 보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기껏해야 중소 규모 축제의 홍보비용도 안 되는 예산에 불과하다. 정작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예산이 아니라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손수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은 이른바 유명한 전문 기획자가 아니다. 바로 임실필봉농악보존회 관계자, 전수받기 위해 모인 전국의 대학생, 강진면 필봉마을 주민 등 풍물이 좋아서 모인 이들에 불과하다.
물론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애초부터 자신들이 진정으로 좋아서,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축제를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자체나 전문 기획자의 인위적인 '부양책'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추모식이 계기가 되어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축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자생력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람객들의 참여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젊은 청년들이나 사회인에게 풍물을 전수하기 위해 여생을 바친 양순용 선생의 개인적 희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당신만의 풍물 연행에 그치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하려는 참 예술인의 자세가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풍물굿 마니아가 모일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풍물굿축제'는 전문 기획자만이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고 있다. 어쩌면 풍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이 축제는 '전통 예술의 현대적 전승'이라는 화두에서도 다른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주목할 만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제의적 역할의 부활을 꿈꾸며
'풍물굿축제'의 의미심장함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렴'하는 준비 과정에도 있다. 아무리 인심 좋은 시골이라지만 무작정 축제 지원을 위해서 지갑을 열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집안의 액운을 몰아내고 안녕을 기원하는 풍물굿 의식은, 축제를 위해 기꺼이 내놓는 자신들의 쌈짓돈이 절대로 단순한 기부나 적선이 아니라고 인식하게 한다.
과거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축제의 '제의적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누구도 더 이상 신화나 무당을 믿지 않지만, 현대인이라고 해서 복을 비는 행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서로를 이롭게 하는 집단적인 의례가 특별한 거부감 없이 행해진다면 굳이 물리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게 분명히 자신의 호주머니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축제를 주최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상적이고 정당한 재원 마련 중의 하나는 지역 상인이나 주민들의 추렴이다. 그것으로 예산의 일정 부분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예산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축제의 개최 이유와 당위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연결고리의 역할까지 한다. 당연히 주민들은 전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축제가 제대로 치러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물론 제의적인 형태가 반드시 풍물굿일 필요는 없다. 축제 고유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기제로 저마다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있다. 축제 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그만큼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다. 요컨대 축제의 제의적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예산 확보와 함께 지역 주민의 참여 의식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남겨진 가능성
이밖에 대동제나 난장으로서 갖는 의미는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풍물굿축제'는 이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인가! 물론 충분한 자생력을 갖춘 만큼 외부인이 간섭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축제가 널리 알려지면서 전문 기획자나 교수 등의 명함으로 찾아오는 '거간꾼'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키워나가야 하는 축제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이번 축제 때 치러진 세미나에서는 '풍물 진법'과 '잡색 놀음'에 대한 논의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는 풍물굿의 연희성에 주목한 것으로,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부분을 끄집어냈다는 데 의미가 상당하다. 또한 한편으로 시작에 불과하지만, 향후 풍물굿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대중과 가깝게 다가가려는 기초를 닦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기 겨루기 대회가 더 내실 있고 풍부하게 치러졌으면 하고, 다양한 형식의 창작 풍물굿 경연 대회도 열렸으면 한다. 이를 통해 풍물 진법과 잡색놀음의 현대적 변형 가능성이 보다 다양하게 모색되었으면 한다. 풍물굿이 전승자들의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삶 속 순간순간에서 마주치며 진화하는 일상적 대중 예술의 자리를 다져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