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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데>
<사람이 뭔데> ⓒ 현암사
전우익 선생님의 나무 사랑은 유별납니다. 아니,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삶 속에서 체득된 지혜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진득하게 녹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사고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주름진 얼굴에서 수줍게 새어 나오는 미소는 대자연의 움직임처럼 거대합니다. 아니 자연의 섭리가 얼굴의 주름을 따라 마음속으로 가슴속으로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퍼질러 앉아서 아니 비스듬하게 누워서 선생님의 책을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산으로 들로 가벼운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을 줍니다.

전 선생님의 글을 따라 이 산, 저 산,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다 보면 정말 허기를 느끼게 됩니다. 층층나무, 피나무, 엄나무, 노각나무, 함박꽃, 박달나무 등등 나무에 대한 자연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부족한 자연에 대한 배려와 섬김을 충분히 품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과 순수한 마음이 내게로 전해오는 느낌입니다. 전 선생님은 "어마어마하게 가득 찬 물이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머물러 있는 저수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찍소리 없이 한평생을 보내는 앞산에 빽빽이 들어선 수많은 나무"같은 사람이 바로 전 선생님이십니다.

<사람이 뭔데>(현암사)를 읽다 보면 전 선생님 말씀처럼 정말 "사람이 뭔데, 인간이 뭔데, 내가 뭔데"라는 기분이 듭니다. 자연 앞에서 나무 앞에서 인간은 주인도 아니고 인간만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을 대하고 나무를 대해 왔습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따스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인간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무와 자연은 인간의 그런 행동을 묵묵히 받아주고 인내해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사람이 뭔데>는 생활 속에서 자연 속에서 전 선생님이 체득한 지혜서입니다. 이 지혜서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세상이 된다면 이 사회는 그 만큼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식이 숙성된 사회인 것입니다. 정신은 없고 물질만 판을 치는 세상에서 전 선생님은 올바른 정신을 우리들에게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시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와 손, 예전에는 뇌의 외화(外化)가 손이라 했는데 요즈음은 손의 내화(內化)가 뇌라 합니다. 손, 손, 손이 못된 짓도 하고 좋은 일도 하는데 어떻게 할까는 각자의 몫"이라고 말씀하시는 전 선생님은 생각이나 말보다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생활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음 따라 손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 따라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정신과 의식이기 때문에 다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은 자연에 유익하지도 우호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손이 의식보다 먼저 자연에게 다가갈 때 자연과 인간은 동화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고 오래 묵은 나무는 늙음과 젊음을 더불어 살고, 삶과 죽음을 함께 안고 있답니다. 노거수(老巨樹)는 나무 전체에서 생명 유지 활동을 하는 부분은 극히 적답니다. 나무는 이미 살아야겠다는 노력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됐답니다. 이른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거죠. 이 나무는 이미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다만 하늘과 땅을 우러러 조용히 기도드리고 있는 것 같답니다. 그러한 생명 앞에서 섰을 때, 우리 마음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정말 인생을 달관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나무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지혜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할 일은 많고 세계는 넓다고 외치는 경제인과 개발과 성장만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삶의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서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다"라고 말했던 전 선생님은 나무와 자연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사랑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숲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자연과 숲을 파괴하는 인간은 근원적 고향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줄무늬 삼나무는 바로 한자락의 숲을 이루고 있답니다. 수많은 딴 나무와 함께 사는 나뭅니다. 귀찮다고 무겁다고 털어 버리지 않고 함께 산대요. 이러한 삶이 어쩌면 이 나무가 오랜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근원 같기도 하데요. 붙어사는 활엽수 잎이 떨어져 거름이 되고 끊임없이 날아드는 새가 누는 똥도 뿌리가 뻗은 땅을 기름지게 할 거라고요."

인간과 인간도 자연과 인간도 자연과 자연도 이런 공생과 상생의 관계를 서로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에서 다른 하나가 사라지거나 아프게 되면 다른 한쪽도 역시 불완전한 생명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이 자연을 섬기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흙 위에 발을 딛고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이 말씀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주거(住居)나 생활방식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 교사입니다.


사람이 뭔데 - 전우익의 세번째 지혜걷이

전우익 지음, 현암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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