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과 제도권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많은 평민들의 삶은 현대에 이르러 그 중요성과 가치를 발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권세가, 명망가 중심으로 기록된 작품들 외에 제도권 밖 예술가들이 남긴 훌륭한 작품도 많았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는 것 중 다수가 당대에는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천민집단이 연행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젠 그것들이 인류가 추앙하는 문화유산이 됐다.
최근 박물관도 유물 진열장을 벗어나 생태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등으로 그 의미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경제는 발전했지만 그런 세계적 경향에 충분히 조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이제 불과 몇 년만 지나도 근대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IT강국인 대한민국에 근대생활사를 모은 '웹 아카이브' 하나 구축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진정 IT강국인지 의문스럽다. 세계 문화의 조류를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면,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민속 문화유산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화가들이 아니라 민간의 이름 없는 화가들이 그렸을 민화는 문자만으로는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상을 읽는 데 소중한 자료다. 아직은 민화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민화에는 작자가 없고 당연히 연대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화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 제도권 화풍과 무관하게 그저 작가가 그리고 싶은 대로, 혹은 주문한 이가 바라는 대로 그린 것들이기에 소재도, 형식도 다양하다. 민화에서는 현대의 사상적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제도권 작가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권력에 대한 풍자나 해학이 민화에서 펼쳐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선의 선왕을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종묘라는 건 상식이지만, 서울 마포구 신수동 복개당에 모셔졌던 세조의 영정에서 상식 밖 사실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1년에 세 차례 유교식 동제로 모셔졌던 세조의 영정을 비롯해 다양한 민화에서 역사의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은 6일부터 봄 전시에 이은 소장 민화 특별전 '민화 - 변화와 자유로움'을 연다. 개막 하루 전인 5일 열린 관계자 초청 개막식에는 민속학계와 박물관 관련 인사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민화특별전에 관심을 보였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2002년부터 집중적으로 수집한 민화 중 봄 전시 때 소개되지 않은 250점을 선보인다. 공간적으로 일상생활의 공간과 마을신앙의 장소인 당집의 공간으로 구분했고 파격, 과장, 해학이 풍부한 민화적 특성을 집중 감상할 수 있도록 선별했다.
물속에 물고기와 함께 지상의 꽃나무가 그려지고 작은 화분에서 나무 기둥이 고목같이 뻗어 나오는 게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 현대미술과 연결해 생각할 수도 있는 작가의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 오전, 오후 두 차례 전시작을 설명한다. 미리 시간을 알고 가면 민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의 : 전시운영과(02-3704-3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