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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순간 길쭉한 호박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순간 길쭉한 호박 같다고 생각했다. ⓒ 양중모
"하미과(哈密菓) 먹자!"

수업이 끝난 후 친구가 하미과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과일 이름이었기에 난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척이나 생소했다. 하지만, 중국은 워낙 음식이 다양한 나라 아니던가.

일단 어떤 과일인지 궁금해 친구와 함께 하미과를 사러 갔다. 과일 가게에서 친구가 가리킨 하미과를 보는 순간 '역시 중국 과일은 큼직큼직하구나'하고 생각했다. 약간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길쭉한 모양새가 호박 같았다.

"11.4위안!"

어쨌든 신기했기에 사기로 결심하고 하미과를 전자저울에 올리는 순간 상인이 부른 가격이다. 잠시 멈칫했다. 벽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분명 1진(500g)에 1.9위안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1.4위안이나 나오다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번만큼은 절대로 당할 수 없다'고 굳게 결심하고 전자저울과 상인을 번갈아가며 노려봤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참 동안 계산했다. 다른 중국인이 저울에 과일을 올려놓으려 하는 것을 보면서도 계산에만 집중했다. 참고 기다리던 상인이 "계산이 맞다"며 결국 화를 냈다. 상인이 화를 내는 순간 확신했다. '내가 외국인이라고, 상인이 날 분명히 속이고 있는 거다!'

내가 하염없이 그러고 있자, 옆에서 과일을 사던 한 중국인 아저씨도 하미과가 놓인 전자저울에 나타난 가격 표시를 가리키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산수에 워낙 약한데다 남의 나라 전자저울 앞에서 계산해야 했기에 무척 애먹었다. 더욱이 옆에서는 상인이 계산이 정확하다고 소리 지르고 다른 아저씨도 저울을 가리키며 설명해, 난 도통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옆에 있던 상인에게 나도 화를 냈다.

반으로 나눈 모습. 과육 속에 씨가 많이 박혀있다.
반으로 나눈 모습. 과육 속에 씨가 많이 박혀있다. ⓒ 양중모
상인이 조용해진 틈을 타 전자저울에 나타난 숫자대로 다시 계산했다. '어?' 하미과 무게가 3Kg이니 500g에 6을 곱하면 대략 계산이 맞았다. 공연히 상인에게 화를 낸 셈이다. 무안해서 그대로 나오고 싶었지만, 이미 올려놓은 과일을 두고 휑하니 나올 수도 없는 노릇. 한국에서 구경 못한 과일 한 번 먹어보겠다고 나섰다가 망신만 당한 셈이다.

그래도 신기한 과일 한 번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창피함을 무릅쓰고 사왔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먹어야할지 난감했다. 크기가 수박 정도 되니, 수박처럼 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일단 하미과를 반으로 잘랐다. 속을 보니 주황색 과육에 씨가 꽤 많이 박혀있었다. '맛있을까?' 조금씩 의문이 들긴 시작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끝가지 가기로 결심했다.

반으로 자르고 나니 껍질이 눈에 거슬렸다.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친구가 답답했는지, 옆에서 껍질을 살며시 벗겨내라고 조언했다.

중국 길거리에서 하미과 파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팔 때는 안에 있는 씨를 미리 뺀다.
중국 길거리에서 하미과 파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팔 때는 안에 있는 씨를 미리 뺀다. ⓒ 양중모
친구 말대로 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칼을 빼앗아갔다. 자기가 하겠단다. 하미과를 자주 먹어봤는지 친구는 능숙한 솜씨로 껍질을 다 벗기고 나서 여덟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하미과 조각에 젓가락을 꽂았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하미과는 여름에 길거리에서 아저씨들이 막대를 꽂아 파는 그 과일이었다. 굳이 사먹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고생 끝에 사온 하미과를 맛볼 차례. 학수고대하던 하미과를 맛봤다. 그런데 다소 밋밋했고 맛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중국에 와서 새로운 과일을 맛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만족감은 곧 저 멀리 날아갔다.

"근데 하미과가 대체 무슨 과일이야?" 하미과의 정체가 궁금했던 난 하미과를 사먹자고 했던 친구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을 듣는 순간 만족감 대신 허탈감이 밀려왔다. '중국에 있는 건 다 특별하다'는 고정 관념이 날 사로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이건 멜론의 일종이야."

덧붙이는 글 | 정말 잘 고르면 달콤한 것도 고를 수 있으니 한 번 드셔보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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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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