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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의 분단 이야기>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시리즈'의 109번째 책이다. 책세상문고는 지난 2000년 제1권 <한국의 정체성>을 시작으로 지난 8월에 발간한 제110권 <재미의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대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크기와 두께에 담아왔다.

▲ <한국 소설의 분단이야기>
ⓒ 책세상
<한국 소설의 분단 이야기>(책세상, 2006) 역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무거운 주제인 '분단'을 다루고 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책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사건이 우리 문학, 특히 서사문학인 소설에 어떤 빛깔의 그림자를 드리웠는가를 분석한 문학비평론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그림자의 빛깔도 여럿이다. 마냥 컴컴하기만 할 것 같은 그림자의 빛깔도 시대에 따라 명도가 달라진다. '분단 소재 소설의 유형화와 소설사적 의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이 책에서 그 그림자의 명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반공 시대'의 빛깔과 다른 하나는 '탈냉전 시대'의 빛깔이다. '반공시대'는 '반공 규율 사회와 소설의 응전'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한 개의 장을 이루었고, '탈냉전 시대'는 '역사와 기억의 경합'이라는 소제목 아래 또 하나의 장을 이루었다. 앞장의 시간적 배경은 6.25부터 군사독재정권까지이고, 뒷장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 현재까지다.

두 시대의 그림자 안에서 수많은 소설가와 작품이 탄생했다. 첫 번째 시대에는 반공주의가 반(反)반공주의를 얼마나 이분법적으로 타자(他者)화했는지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순반란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인 박종화의 <남행록>, 김동리의 <형제>는 '공산폭도'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감정적으로 반공을 호소한다.

분단 체제의 고착화는 작가들에게 '검열'의 압박으로 돌아온다. 1965년 작가 남정현이 단편<분지>로 필화를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가들은 이데올로기가 정하는 규율에 따라 작품쓰기를 강요받는다. 검열자들이 말하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국가 규율 장치에 대한 순응이었고, 사회주의로 흐르는 정치적 급진성이나 실험성, 이탈 가능성을 마음에서부터 차단하는 것이었다.

반공주의의 억압과 무차별적 사상검열은 작가들에게 공포와 불안, 금기, 자기 검열의 글쓰기를 낳았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에서 주인공은 '전깃불 공포'를 겪는다. 개인의 실존에 관여하는 국가의 폭력 앞에 자신을 은폐하고자하는 불안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은폐와 공포의 분위기를 우회하여 가족의 이야기로 환기시키는 작품들도 있다. 좌익분자인 아버지, 형, 삼촌 등의 이야기를 다룬 윤흥길 <장마>, 박완서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김동성 <집>, 김원일 <불의 제전>, 이문열 <영웅시대> 등은 감시와 통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분단 이야기를 가족사에 스민 자전적 체험으로 외피를 씌운다.

80년 5월 광주는 탈냉전 시대에 분단 이야기의 새로운 물꼬를 틔워 준다. 광주항쟁으로 작가들은 국가폭력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광주학살에 전율하며 시대적 배경을 해방정국과 6.25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큰 원한을 남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굿을 통해 해원하고자 하는 작품도 있다. 황석영의 <손님>이 그것이다. 애증도 적의도 사라져버린 원혼들에게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작가는 그것이 거추장스럽기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여성들이 겪은 전쟁의 기억이 침묵을 깨고 나타나는데, 박완서, 오정희, 윤정모, 조은 등은 여성 주체의 목소리로 분단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수와 원한의 집단 심성을 화해의 당위성으로 전환하는 남성 작가의 글쓰기와는 달리, 여성의 기억은 뚜렷하게 자기 성찰적이며 거대 이념에 포획되지 않는다.

분단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우리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분단이 드리운 두 가지 빛깔의 그림자 속 작품을 거론하기 전에 지은이는 '분단의 현재성'에 먼저 주목했다. 지난 2005년에 맥아더 장군 동상의 철거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났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몸싸움이, 인터넷에서는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했다. 지은이는 이 사건이 해방정국에서나 있었을법한 사상 대립과 갈등이 광복 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분단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기에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날카롭다.

기성세대가 전쟁공포증을 강박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젊은 세대는 전쟁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분단문제에 무관심하다. 민족 분단의 문제는 잊혀진듯하지만, 사실은 고스란히 '이월'되었다. 지난 2002년의 서해교전 사태,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와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치국면, 남북관계마저 급격하게 경색되는 상황은 분단 문제가 여전히 우리민족에게 시한폭탄 같은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남북한 사회가 서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체제와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상호존중의 태도'인데,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 살아온 지난 60년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은이는 문학 속에 등장하는 분단 이야기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분단 이야기는 분단의 비극적 현실통찰로 그치지 않는다. 분단 이야기는 '분단은 왜 비인간적이고 정당하지 않은가, 분단이 왜 일어났고,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분단은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분단 이야기는 슬픈 과거사가 아니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이야기다.

이 책은 분단이라는 무겁고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전혀 난해하지 않다. 소설을 매개로 분단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게다가 보론으로 북한문학을 다루어주었고,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 소설 목록 100여 편이 부록으로 실렸다. 이만하면 두꺼운 양장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친절한 구성이다. 5천원 미만의 돈으로 펄펄 살아 뛰는 인문학적 사유(思惟)를 맘껏 맛볼 수 있다는 것, 이것도 이 문고판 도서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한국 소설의 분단 이야기

유임하 지음, 책세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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