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공동체 구성을 위한 회의 현수막
공동체 구성을 위한 회의 현수막 ⓒ 고기복
그런데 총회를 시작하기로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지만, 낯익은 얼굴들마저 보이지 않을 만큼 모인 사람들이 적었다. 작년에 모였던 인원을 생각하면 회원이 많이 늘었다는데 의외였다. 지난 회기 임원들에게 회원들에게 연락을 제대로 했는지 물어보았다.

"전체 회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일주일간 세 번씩이나 보냈어요. 늘 이런 식이죠, 뭐. 우리끼리 한 약속 시간을 고무줄로 아는 거…."

참석해야 할 회원들이 보이지 않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공동체 대표는 '어디 한두 번 경험한 일이냐'는 투다.

결국 약속한 시간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회의가 시작되었다.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의례적인 인사와 절차가 한 시간을 넘게 진행돼서야 대표 선출을 위한 소견 발표가 시작되었다.

후보자 소견발표를 듣고 있는 청중들
후보자 소견발표를 듣고 있는 청중들 ⓒ 고기복
한 명의 후보가 소견발표를 마치자, 좌중에 앉아 있던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 발언 기회를 줄 것을 요구하였다. 사회를 보던 친구가 그 요구를 무시하고 진행하려 하자, 손을 들었던 회원이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지난 회기 총무를 맡았던 '아구스'였다. 결국 아구스에게 잠시 동안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구스는 본국에서 지방지 기자 생활을 했었는데, 시시비비를 잘 가리는 친구다.

"우리 공동체 식구가 1300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고작 100여 명이 앉아 있습니다. 총회가 되려면 최소한 그 절반이 참석하거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선 후보자들의 소견을 듣고, 일주일간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하며, 회원들의 총회 참석을 독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절차상 문제도 없고, 많은 회원들의 의견도 반영된 투표가 될 것입니다."

아구스의 입장은 총회 성원이 되지 않으니, 다음 주로 미루고, 그동안 후보들로 하여금 선거운동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시오'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회를 보던 친구가 마이크를 돌려받더니, 회칙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자는 소리는 않고, "힘들게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그대로 진행할까요? 다음 주에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좌중은 대부분 "이 자리에서 합시다"로 답했다. 평상시 같으면 한마디씩 거들었을 법한 친구들도 입을 다물었다. 아구스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자가 바람을 잡아버려서인지 법대로 하자는 아구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구스의 말대로 총회 성원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임원을 선출한다면 선거가 끝난 후 누군가가 시비를 걸거나 공동체간의 불화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진행이었다. 하지만 굳이 규정을 시비 삼아 뭐하겠느냐는 태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외국인으로서도 아구스의 지적이 옳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투표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는지 회의 진행에 불만을 표하며 몇몇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투표결과는 후보 간 격차가 크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대표가 된 후보는 다행히 선거에 나온 후보들을 감사와 총무로 추천하여 선거 과정의 잡음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였다.

선출된 임원들 인사
선출된 임원들 인사 ⓒ 고기복
선거가 끝난 후 신구 임원 모임이 쉼터에서 있었는데, 자리에 함께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 자리를 같이했다.

선거 과정 중에 생긴 잡음 때문이었는지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총회성원 문제를 시비를 거는 회원들이 있는데,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문제를 풀려면 원칙이 어떤지를 알고, 그 원칙에 따라 푸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동체 회칙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이 가운데 한 명이 급하게 프린트를 하고 왔다.

총회 성원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았다. "최소 회원 50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50'이라고 쓴 부분은 50%인지, 50명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창립총회를 기준으로 하면, 참석인원이 1백여 명이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는 규정이었다. 그러나 회원 수가 불어난 지금은 애매할 수밖에 없는 회칙이었다.

의견을 묻는 신구 임원들에게 나는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간단하게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쉽게 총회를 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거리가 먼 사람도 있고 하니, 총회 성원을 문제 삼는다면, 최소 50명이라고 해 두고 싶다. 하지만 아구스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 이 부분은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 반대가 있는 친구들의 의견을 잘 들었으면 한다. 누구나 처음은 힘들고 실수도 많은 법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해 왔던 경험을 살려 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평소 공동체 자치활동에 대해 가타부타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선거에 임한 후보들의 이견이 없는 이상 선거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법대로 하시오'라고 요구했던 아구스와 M**이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17일 인도네시아 공동체는 똑같은 장소에서 전체 모임을 갖는다. 건강교육과 공동체교육을 위한 자리이긴 하지만, 선거 관련한 잡음에 대한 해명이 임원들에 의해 있을 예정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