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성신문
박희영씨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유일한 여학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기전자공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후 11년째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다.

"공학을 오랫동안 전공하고 있지만 회사에 가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 필요한 게 뭔지 잘 몰라 당황스러워요."

그가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은 고민을 공유할 여자 선배가 없다는 것. "정규교육에서 여학생에게 불리한 점은 없어요. 그보다는 선후배 관계에서 끈이 없는 게 문제죠."

상대적으로 여학생 비율이 낮은 전기전자공학과(10%) 여학생들은 특히 학교생활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한란(전기전자3)씨는 "남학생들끼리 게임 등 공통 관심사나 성에 관련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때 기분 나쁘다"고 털어놓는다.

신호선(전기전자3)씨는 "어려서부터 여자는 언어능력이 좋으면 칭찬받지만 '수학 잘해야 돼'라는 얘긴 여학생에게 잘 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그런 인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게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

"취업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 "여성 장점 살려야" 지적도

여자 선배에 대한 갈증은 취업과 박사과정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전혜진(정보산업공학 석사과정)씨 역시 마찬가지. 전씨가 속한 과에서 여자 석사는 10명 내외, 박사는 1명에 불과한 실정. "워낙 소수라서 졸업생 선배와 연계가 잘 되지 않아 정보를 얻기 어려워요."

공대(총 11개 과)에서 다른 과보다 여학생 비율이 높은 생명공학과(38%) 학생들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3학년 때 과대표를 맡았다는 박정은(생명공학 4)씨는 "여자 선배는 3학년이 되면 '공부'한다며 사라진다"며 "도움 받을 수 있는 선배도 없고 여학생 모임도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오은지(생명공학3)씨도 "진로를 상담할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같은 실력으로 입학했지만 졸업할 때 남학생과 차이 나는 이유는 뭘까?

강진영(화학공학4)씨는 "리더십 차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강씨는 "프로젝트(4~5명이 한 조)를 수행할 때 대부분 남자 복학생이 조장을 맡기 때문에 나머지 학생들은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꼬집는다.

임은경(화학공학4)씨도 "학점은 여학생이 더 높지만 다양한 경험이란 측면에서 남학생보다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임씨는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로 입학했지만 지금은 전공에 대한 애착이 그때보다 약해졌다"며 씁쓸해했다.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대학'으로 뽑인 연세대 공대 여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대학'으로 뽑인 연세대 공대 여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여성신문
전공 분야로 취업해도 걱정은 계속된다. 전혜진씨는 "여성 연구원은 결혼과 육아 문제 때문에 연구에 집중할 수 없고, 고용주 측에서도 연구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며 "연구소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박희영씨는 출산과 육아문제가 직장을 선택할 때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박씨는 "시작은 같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 똑같이 할 수 있을지 하는 걱정에 간접적으로 위축된다"고 말한 뒤 "결국 직업을 고를 때 일정한 선을 긋게 된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입사 4~5년차가 되면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공무원이나 공사 시험을 치러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대 여학생에게 불리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유경(화학공학4)씨는 "젊은 교수님이 많아진 후 여학생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며 "오히려 여학생이 소수라서 당하는 불이익보다 얻는 이익이 많다"고 말한다. 정씨는 "섬세함, 의사소통 능력 등 여자의 장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강조했다.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