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절한 쇠사슬 여인님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난 것입니까.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입니까.
당신들은 차갑고, 무거운 쇠사슬을 허리에 묶은 채 지붕 위에 매달려 외쳤습니다.
"집을 허물어 인권을 죽이지 말라!"
"대추리 농민을 압살하고, 전쟁기지 확장하는 국방부를 규탄한다!"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조여드는 무장경찰과 용역직원들에게 눈물로도 호소했지요.
"아저씨들, 여기 살고 계신 어르신들은 여러분 부모님같은 분들입니다. 제발, 집을 부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들은 밥도 안 먹나요.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분들게 이러면 안됩니다. 양심을 버리지 말아주세요!"
새벽 3시에 지붕 위로 올라가 낮 3시가 넘을 때까지, 친절한 쇠사슬 여인들은 죽을 힘을 다해, 온몸을 다해 싸웠습니다. 구속과 부상의 위험도 마다 않고요.
수십 채의 가옥이 파괴됐지만, 그래도 여러 채의 집이 살아남았습니다. 이 나라 인권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겨우 목숨만은 부지한 것입니다. 그대들의 친절함 덕분입니다.
차가운 쇠사슬에 묶였던 그대들의 배는, 따뜻한 대추리의 쌀밥으로 덥힐 '자격'이 있습니다.
2. 불친절한 춘석씨
춘석씨, 국무조정실 산하 주한미군이전대책기획단 부단장 김춘석씨. 대추리에는 뭐하러 왔나요. 약 올리러 왔나요? 늙은 농부들 염장 지르러 왔나요? 저 너머 캠프 험프리의 그리운 님들께 '몰래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건가요?
당신의 얼굴에, 이 나라가 자랑하는 '역사적 국책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너무도 또렷하게 씌어 있어 아찔했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위헌적 요소마저 가득 안고 있는 이 사업의 한가운데엔 당신 같은 자들이 버티고 있었던 게로군요.
당신이 내뱉은 언어가 무엇이었는지, 아래에 연결해 둔 당신의 음성을 똑바로 들어보세요.
뭐라고요? 하늘이 참 맑다고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부수지 않겠다"던 당신들의 브리핑은 어데로 사라지고, "사람 사는 집마저 부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답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대답하면 끝나는 일인가요? 그저 하늘만 맑던가요? 아, 당신은 음유시인이었군요.
그러니 당신들의 국정브리핑을, '걱정브리핑'이라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불친절한 춘석씨,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받은 것을 "억류됐다"고 보고하는 춘석 씨. 당신의 기름진 배에는 이 나라 농부들이 애써 지은 쌀 밥 한 톨도 아깝기만 합니다. 우리, 인간이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이 되지는 맙시다.
덧붙이는 글 | 9월 24일, 대추리의 평화를 염원하는 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대추리 도두리의 늙은 농부들을 이대로 죽이고 만다면,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하늘이 맑기만 할까요. 우리의 관심과 참여만이 평택 미군기지 문제의 슬기로운 해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아직은 버릴 때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