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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에서 본 매미. 굉장히 큰 매미였는데 딸은 이 매미를 보고 뭔가 느낀 게 있어서 시를 지었다.
오죽헌에서 본 매미. 굉장히 큰 매미였는데 딸은 이 매미를 보고 뭔가 느낀 게 있어서 시를 지었다. ⓒ 김은주
사임당이 율곡을 낳은 방인 몽룡실의 정갈하고 말쑥한 빈 방을 들여다보며 사임당이 정말로 존경스러웠다. 아이와 싸움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과 비교하다보니 그녀의 가치는 더욱 상승했다. 훌륭한 인격과 어른스러움이 갖췄기에 자식들을 다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난 확실히 모자라는 엄마였다. 나의 어떤 점이 모자라는지는 모르지만 아이와 싸우고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고 있는 내가 엄마로서 부족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막막했다. 갑자기 저 잘났다고 고집을 피우고, 엄마와 어깨를 견주려 하는 딸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나 하고.

사임당은 나처럼 허점을 보이지 않는 훌륭한, 언제나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로서 내가 부족하단 것을 느끼긴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떤 엄마가 돼야 할지 갑자기 아무것도 길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유난히 햇빛이 밝았다. 눈부시게 밝은 햇빛을 받아 몽룡실 창호지는 더욱 하얗게 보였다. '엄마라는 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혼란에 빠진 내게 사임당은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사임당 전기집>을 잃고 훌륭한 엄마의 모범 답을 한 번 품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돌려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갔다.

아직은 엄마 말을 잘 듣는 둘째에게 선물로 신사임당 만화책을 사주고, 선물가게 앞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싸운 끝이라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남편과 큰 애의 모습이 보였다.

사임당, 그의 교육관이 궁금하다

오죽헌 입구에 있는 건물,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기품이 있는 모습이었다.
오죽헌 입구에 있는 건물,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기품이 있는 모습이었다. ⓒ 김은주
"엄마한테 죄송하데."

큰 애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고 남편이 대신 전해줬다. 우린 나란히 벤치에 앉아 아침에 준비해간 음료수와 간식을 먹었다. 겉으로는 화해를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 분명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애가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 시작했고, 난 큰 애를 나와 대등하게 바라봐야 할 시점이 온 것이라는 걸 느꼈다.

오죽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사임당은 그림도 잘 그리고 시도 잘 지었는데, 만약에 자식들을 제대로 못 키웠다면 아마도 그녀는 황진이나 매난설헌처럼 문인으로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예술적 가치나 효부로서의 면모보다도 '한국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예술가보다는 훌륭한 어머니에 더 가치를 두었기에 신사임당을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봤다.

한석봉의 어머니와 함께 대표적인 한국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는 사임당의 교육관은 무엇일까? 또 그녀는 어떤 식으로 자녀를 가르쳤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오죽헌에서는 그런 건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예술가로서 신사임당은 뛰어나지만 자식을 훌륭하게 가르친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만큼 거기에 콘셉트를 맞춰서 오죽헌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처럼 어머니의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엄마들의 안내자가 되어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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