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죽었다. 어떻게든 북한과 관련지어서 100일 넘게 구금하기도 하고 여관방에서조차 고문을 해댔다. 안기부가 나쁜 짓 하면 검사, 판사가 그걸 못하게 감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을 배운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는가."
15일 오후 3시 성균관대 법과 대학 주최로 '열린 강의'에 나선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의 말이다. 그는 법학과 학생들 위한 이 강의에서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잔치를 벌일 게 아니라 오히려 근조(謹弔)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말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억울한 일 당하고 제대로 구제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여자 분이 있었어요. 제가 변호를 했는데 판검사들이 제 변론 요지서를 잘 안보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절에 들어가서 각주까지 써가며 꼼꼼히 다시 글을 쓰고 제 변론서 좀 읽어달라고 했죠. 결국 승소를 했는데, 이렇게 매번 하다보니 진이 안빠질 수가 없겠더라구요."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가 철저히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얼마 전에 읽었다는 <로마인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70억 뇌물 받고도 처벌받지도 않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뇌물이 뭔지에 대한 기준도 없죠. 예전에 하버드대 윤리위원회에 가봤는데, 거기는 편지 하나 붙이는데도 기준이 있더라구요. 로마에서는 '행군하는 법', '숙영지 선택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이 법률화되어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로마가 유럽세계를 천년이나 지배할 수 있게 된 원인이죠."
"판·검사 이외에도 길은 많아... 나도 안 굶어죽었다"
그가 이렇듯 법학과 학생이라면 가질 법한 법조인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철저히 깨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는 사법고시만이 '정도'는 아님을 강조하며 공익을 위한 비영리단체(NPO) 활동을 제안했다.
"우리 사회에서 공익적인 부분들에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요. 다른 나라 비영리 단체를 보면 국내 총생산의 7%나 차지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비영리단체라고 말하면 다 굶어죽는지 알고 아무도 안가요. 내가 지금 굶어죽어 가고 있습니까?"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역시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언젠가 사법연수원에 가서 비영리단체 일을 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진짜로 절 따라오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돈은 얼마 못 주지만 같이 한번 만들어 보자고 했죠. 그래서 공익을 대변하는 변호사 그룹을 만들 수 있게 된거예요."
'사법고시 이외에도 길은 많다'는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고시 공부 안하고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나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박 이사는 "사법고시를 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다만 변호사, 판검사만을 법대생의 유일한 진로로 생각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을 언급하며 "내 말에 공감하는 학생은 강의 끝나고 나한테 오라. 함께 같이 걸어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 명함에 박힌 박원순의 직업은? | | | "걸레처럼 세상 닦는 소셜 디자이너" | | | | 변호사, 전 시민단체 사무처장, 일일교수…. 다양한 이력을 가진 박원순 상임이사. 이 정도면 분명히 사회저명인사인데, 그는 자신을 '걸레'라고 소개했다.
그의 명함에도 의외의 직함이 적혀 있었다. '변호사'나 '상임이사'가 아닌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였다.
걸레? 소셜 디자이너? 언뜻 잘 와닿지 않는 이 두 단어에는 그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다.
"너무 요란한 수레에는 많은 게 실리지 않는다. 이럴수록 내가 스스로 걸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가 더러워질 수도 있겠지만, 깨끗한 걸레로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닦으면 되지 않겠는가."
알고 보면 걸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총장이니 이사장이니 하는 직책은 자신에겐 부담스러운 직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의 직업에 얽힌 독특한 경험을 얘기했다. "낙선운동 때문에 법정에 섰는데, 판사가 직업이 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시민운동가'라고 했는데, 판사가 절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그런 직업도 있느냐'며 오히려 되묻더라구요."
시민운동가라고 말하던 그가 최근엔 직업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가 그것이다. "어느날 강연을 갔는데 명함을 보니까 '굿 오거나이저(Good Organizer)'라고 써 있더라구요. 그래서 나 역시 세상을 함께 바꿔나가고 고쳐나간다는 의미에서 '소셜 디자이너'라는 것을 생각해냈죠."
생소하지만 낯선 길이라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박 이사의 생각이다. "소셜 디자이너? 아직 몇 명 안되니까 분명 장사될 수 있어요." / 최훈길 | | | |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를 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현재는 대학 내에서 시민기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