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자 고 이종기 선생은 10년 전 거대한 해상왕국 가야의 비밀을 푼 유작을 남겼다. 그 책이 최근 빛을 보았다.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기획출판 책장)이다. 그 책에 실린 다음의 대목을 살펴보자.
"오늘의 세계가, 그 중에 한반도가 '닷컴(.com)'이라는 미래를 향해 글로벌한 힘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은 그 옛날 바다 위에 점점이 해상도시국가를 세워 드넓은 바다를 통해 국력을 확보해나갔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다와 바다 사이를 잇는 점, 거기엔 어김없이 국가가 세워졌고,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는 수로왕 역시 말하자면 막강한 바다의 힘을 의식하고 활용한 닷컴(.com)의 군주라 할 수 있다."
이종기 선생은 이 책에서 2000년 전 가야국의 영토가 일본 규슈에까지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실증해냈다. 그것도 오로지 자전거의 페달을 돌려서이다.
김수로왕은 꽃가마배를 타고 온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고, 그의 딸은 일본 규수에 건너가 일본 토박이들의 추대로 여왕이 되었음을 밝혀냈다. 일본 규슈에는 가야인들의 도래를 말하는 '갓파도래비'가 있고, 이를 기리는 '오래오래데라이다 축제'가 매년 5월에 열림을 확인한다.
이런 엄청난 가야사의 비밀을 밝혀낸 민족사학자 고 이종기 선생은 15일 재단법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대표이사 김문석, 가락중앙종친회장)이 주는 제5회 '가야문화상'을 받았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은 가락문화 선양과 계승, 가락국의 유적, 유물 발굴 및 보존, 가락국 사기의 개발연구 등을 하는 단체다. 그동안 노태돈 서울대 교수, 송은복 김해시장 등이 가야문화상을 받았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은 이번 수상자로 민족사학자 고 이종기 선생을 선정하고, 이날 서울 마포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무궁화홀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상은 아내 한연옥(79)씨가 대신 받았다.
고 이종기 선생은 1929년 생으로 지난 1995년 세상을 떴으며, <대한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신구문화사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1976년 제1회 세종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하늘과 바다의 사랑>(한국일보사), <가락국 탐사>(일지사)와 일본에서 발행한 직후 강제 회수 당한 <비미호 도래의 수수께끼>(卑彌呼 渡來の謎)가 있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은 수상자 선정의 이유로 수로왕릉 정문 위에 새겨진 물고기 무늬의 장식판, 연꽃, 코끼리, 물고기(신어) 등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발견되는 무늬와 일치함을 발겨하고 학계에 소개한 점, <비미호 도래의 수수께끼>를 통하여 규슈지역의 야마다이왕국의 여왕 히미꼬가 가락국의 공주임을 주장하고, 고대 한일관계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점 따위를 들었다.
먼저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이사인 김시우씨의 수상자 선정 심사보고가 있었다. 김문석 이사장은 취임 직후 이종기 선생의 유족을 찾고, 공적을 확인하여 가야문화상을 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 했으며, 이후 가야문화상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됐다고 보고했다. 또 가락중앙종친회 깃발의 도안도 이종기 선생이 했음을 밝혔다.
이어서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김문석 이사장이 한연옥씨에게 상장과 상금을 전하고 "나는 이종기 선생이 가야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흥분에 휩싸여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고 이종기 선생은 외롭게 홀로 가야를 밝혔다. 선생은 이제 가셨지만 가락문화를 대중화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그 정신과 업적은 영원불멸로 남을 것이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고 이종기 선생의 생전 지기였던 이재천 한국아동문학가협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는 "이종기 선생은 3가 동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자유동시를 썼고, 서사동시의 길을 연 사람이다. 또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이 강했으며, 사학자들이 밝히지 못한 역사사실을 작품으로 쓴 사람으로 역사적인 체험을 작품으로 실현하여 역사가 단순한 기록만이 아닌 실재한 것임을 증명하였다"라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수상자 가족 인사가 있었다. 먼저 고 이종기 선생의 아들 이철우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상무는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아들 자랑도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려 유작집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를 펴낸 큰딸 이영아씨는 "책을 낸다기보다는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으로 일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사회는 '재야'라는 수식어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건 재야사학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고 이종기 선생은 생전에 한 일에 걸맞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선 "당신이었군요"라는 말을 가는 곳마다 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의 이름은 많은 이가 불러줄 것이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의 가야문화상을 시작으로 그의 이름은 온누리에 퍼지리라. 또 그와 동시에 그가 밝혀낸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는 우리를 당당하게 해줄 것이다. 그는 우리 겨레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음 모두가 알게 되리라.
덧붙이는 글 | 대자보, 참말로, 다음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