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조명암은 지난 1941년 일본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으로 등단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연극동맹 부위원장으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 <독립군>, <논개>, <위대한 사랑> 등의 희곡을 발표하고 1948년 월북하였다. 일찍이 <낙화유수>, <바다의 교향시>, <꿈꾸는 백마강> 등 대중가요 33곡을 작사했던 그는 월북 후 <조국 보위의 노래>, <어머니 우리 당이 바란다면>을 비롯한 가사작품들과 민족가극 <금강산 8선녀>, <춘향전>, <밝은 태양 아래> 등의 작품을 남겼다. 북한에서 교육문화성 부상(副相), 평양가무단 단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조명암이 작사한 친일가요는 ▲낙화삼천 (김해송 작곡, 김정구 노래) ▲그대와 나 (김해송 작곡, 남인수와 장세정 노래) ▲아들의 혈서 (박시춘 작곡, 백년설 노래) ▲목단강 편지 (박시춘 작곡, 이화자 노래) ▲결사대의 안해 (박시춘 작곡, 이화자 노래) ▲혈서지원 (박시춘 작곡, 백년설 노래) ▲2500만의 감격 (박시춘 작곡, 남인수와 이난영 노래) ▲지원병의 어머니 (고하정남 작곡, 장세정 노래) ▲아들의 혈서 (박시춘 작곡, 노래 미상-태평음반사) 등 총 9곡으로 알려졌다.
덧붙이는 글 | 박성규 기자는 아산투데이신문사 소속으로 아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신문 및 인터넷언론 기자들의 연대모임인 '아지연(아산지역언론인연대)'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